<시네마 천국>
누구나 마음속에 이상향 하나씩은 품고 있습니다. 이상향은 무척 아름답고, 현실에선 닿을 수 없는 곳이라 초월에 가까운 세계입니다. 하지만, 그 초월에 닿기 위해 사람들은 소망을 넣었습니다. 그걸 집단으로 구체화시켜 종교라 이름 붙였습니다. 종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어 누구나 가고 싶은 이상향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이상향에 누구는 극락이라는 이름을, 다른 누구는 천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현실에서 벗어나야만 닿을 수 있는 이상향은 사실 현실의 마음을 본 따 만들었기에 그 무엇보다 현실과 닮아 있습니다.
초월의 세계는 인간의 마음에서 나왔지만, 그 근본은 신에 두고 있습니다. 신이 창조했고, 신만이 보내줄 수 있는 세계. 그곳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인간은 미지의 세계를 말하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삶을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를 갖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앞에 보이는 세계를 재현했고, 재현 속에서 자기의 인식으로 가상을 창조했습니다. 우리는 창조된 새로운 가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예술입니다. 특히 시각, 청각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영화는 이상향만큼이나 현실과 닮아 있습니다.
천국과 영화가 맞닿은 극장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초월에 닿고 싶은 소망과 새로이 창조된 가상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뒤섞인 이곳에서 보이는 풍경은 무엇보다 현실적입니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연인들은 사랑을 하고,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욕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욕합니다.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잡상인과 그들을 관리하는 경찰, 삶의 무게에 못 이겨 잠을 자버리는 사람까지. 다양한 삶의 모습이 뒤엉킵니다.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모으는 삶을 사는 이가 있습니다. 극장에서 영사기를 돌리는 알프레도입니다.
알프레도는 이 직업이 얼마나 힘들고 별로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는 배운 게 이것밖에 없다며 영사기를 돌리는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삶을 모아 새로운 세계로 전달하는 일을 하는 알프레도의 눈에서 빛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극장에 사람이 가득 차고 웃는 소리가 들리면 그럼 나도 행복해. 다른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뿌듯해지지. 영화 보면서 사람들이 웃잖아. 세상살이 힘든 걸 잊게 해준 거잖아.”
그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즐거움을 주는 가상을 펼치는 이입니다. 현실의 고통을 떠나 모두가 즐거움을 느끼는 곳, 단순하게 말하면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작은 마을의 극장에서 모두의 웃음을 만들어내는 천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를 늘 따라다니는 소년이 있습니다. 신부님이 검열한 키스신 필름을 하나하나 쳐다보고, 영사기의 조그만 것들에도 관심을 가진 소년. 영악하지만, 심성만큼은 착한 소년. 토토는 알프레도의 친구입니다. 알프레도를 귀찮게 하면서도 늘 알프레도를 찾아오고, 마을에서 유일하게 알프레도만 알고 있는 영사기 사용법을 끈질긴 관심을 통해 배웁니다.
하늘의 천국은 영원하지만, 지상의 천국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극장 문이 닫힌 어느 날 사람들은 더 많은 영화를 원했고, 알프레도는 야외에 영화를 틀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영사기에 불이 났고, 화재로 인해 알프레도는 시력을 잃고 맙니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새로운 시네마 천국이 생겨났고, 영사기 기술을 가진 알프레도의 유일한 대체자인 토토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토토는 나이가 들었고, 여전히 극장 일을 했습니다. 한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뜨거운 사랑을 했고, 군대에 갔습니다. 군대는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토토가 늘 하던 극장 일을 뺏었고, 사랑을 잃게 했으며, 변해버린 광경은 고향에 대한 소속감마저 잃게 했습니다. 알프레도는 이제야 가상으로 만들어진 천국에서 벗어나 현실을 마주하게 된 토토에게 말합니다. 이곳을 떠나라고. 알프레도의 진심어린 충고를 받아 토토는 떠났고, 성공한 영화감독, 살바토레 디 비타가 되었습니다.
긴 세월이 지나 살바토레는 알프레도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을 찾습니다. 그는 무척 변해버린 고향. 다 무너져가는 ‘신 시네마 천국’ 극장을 확인합니다. 그의 과거는 이제 고향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억속의 추억만 마음속에 남았을 뿐이죠. 그가 만들어낸 가상도, 그가 가고 싶은 천국도 이제 고향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의 삶이 고향에서 더 나아갈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알프레도와 가족이 만들어준 삶은 이제 과거일 뿐 현재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는 알프레도가 남긴, 천국으로부터 온 마지막 영화를 들고 현재의 삶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 가상에서 그 무엇보다 절절한 삶을 마주합니다. 알프레도의 마지막 선물. 키스를 검열한 필름들을 모아 짜 맞춘 별 볼일 없는 영화. 그 영화에는 알프레도의 삶이 토토의 삶을 향한 것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어렸을 적 토토를 쫓아내며 선물로 주겠다던 그 필름들이 전부 그 영화에 담겨있었습니다.
토토의 삶은 살바토레의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토토의 삶에는 늘 알프레도가 함께했습니다. 영사실을 드나들던 시절부터 영사 기술자로 활동하던 시절. 그 모든 걸 뒤로하고 큰 꿈을 찾아 떠났던 때까지 한 순간도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바토레의 삶에는 알프레도의 사랑이, 그를 담은 삶이 있습니다. 그래서 알프레도의 삶은 누구보다 감동적입니다. 오롯이 하나를 위해 최선을 다한 삶. 그 삶의 모든 것이 천국에서 전해진 영화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상향에서 나온 가상은 그 무엇보다 삶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집니다.
작년 12월 평생을 국악에 몸담은 이(조영숙, 국가무형유산 발탈 보유자)의 노래와 몸짓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흔이 넘었다는 그 사람은 춤을 추다 사고로 허리를 다쳐 허리가 다 꼬부라지고, 거동도 힘들어보였습니다. 골골대며 말하는 할머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그녀는 무대에 올라서자 생기를 보였습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힘이 있었고 까랑까랑했습니다. 말 하나하나에 삶이 느껴졌습니다. 삶에 감사하는 그녀의 노래는 ‘비나리’, 신에게 앞길에 행복을 기원하는 말. 그 말에 맞추어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고작 팔 동작 하나가 거기 앉아 있는 모두의 시선을 빼앗았습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그 동작에는 순간순간 찰나에서 영원에 가까운 삶의 가치가 느껴졌습니다. 노래와 춤을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의 삶은 다시 노래와 춤이라는 인간의 예술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녀가 표현한 행복에는 이상향으로 향하는 길이 있었지만, 그 너머에는 그걸 지탱하고 바라온 그녀의 삶이 보였습니다. 하나만을 바라본 이의 무게감이 있는 삶. 아름다웠습니다.
알프레도의 영화와 조영숙 선생님의 몸짓은 가상과 현실, 시간과 장소를 넘어 맞닿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누구보다 잘 표현한 예술입니다. 토토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담아낸 그 예술들은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삶을 선사합니다. 아무리 멋진 말로 이상향을 만들어내고, 높은 기교로 현실보다 매혹적인 가상을 예술로 표현한다 한들 삶이 주는 묵직한 감동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그저 우리의 삶을 더 많은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삶이 존재하기에 그 모든 것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니까요. 그래서 치열하고 생생하며 무게감 있는 다양한 삶들은 그토록 아름답고 감동적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