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죽음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

<코코>

by baekja

전화가 왔습니다. 제 친구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본 그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업무의 힘듦을 토로하는 그의 친구의 말들 뒤에 숨겨진 의미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마 그 전화를 오랜 기간 계속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올해의 시작은 화장터에서였습니다. 오산천에서 자주 봤던 그 친구의 웃음은 사라져 있고, 붉은 눈시울만 보였습니다. 화장터에서 저는 울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시간들이 지나고 저는 어렵지 않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친구의 일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가 늘 살아왔던 일상은 이제 없었습니다. 친구 혼자 끌어가야 하는 회사에서 느꼈을 그의 감정을 저는 아마 오랜 기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이기적이게도 평생 이해하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화는 회사에 대한 불평이었지만, 곳곳에 빠져 있는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부재를 실감케 했습니다. 그 부재의 무게감이 친구의 말에서 전해져 왔습니다. 압도적인 그 무게감에 짓눌려 몇 가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제가 힘들었던 어느 순간들의 이야기. 어둠에 빠져 삶을 헤매이고 손과 발을 떨며 어쩔 줄 몰라 했던 이야기. 사실 그 친구의 깊은 슬픔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제 이야기가 그 친구에게 위로가 되었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통화가 끝나고, 밤의 어둠은 제 마음을 더욱 어둡게 했습니다. 꽉 막혀버린 마음은 늘 고민했던 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할 사람들의 끝,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삶의 끝. 이성은 그 끝에 남겨진 무(無)에 대해 속삭였습니다. 그 아무것도 없음이 너무나도 어려워 저는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그래서 간만에, 정말 간만에 계속 술을 마셨습니다. 술이 주는 기억의 흐릿함과 감정의 고조가 데려다 줄 그곳만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마주한 끝에 대한 회피의 수단으로 술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합니다. 죽음이 모든 끝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 답변이 이 영화에 있습니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불빛, 그 어느 것도 닮지 않은 건축물들. 이승에서 볼 수 없는 건물들과 그 건물들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 숨이 멎게 하는 아름다움을 가진 이 풍경은 저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사실 이런 아름다움은 제게 안심감을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좋은 관계를 맺은 이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갈 수 있다면 저는 무척 즐거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승에서 모든 기억에 잊힌 이들은 마지막 죽음을 맞이합니다. 마지막의 마지막, 무로 돌아가는 그 모습은 무서움, 슬픔, 절망을 동반합니다. 적어도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억에 그렇게 매달리는 지도 모릅니다. 잊히는 것만이 완전한 죽음이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말일 겁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모두가 세계 전체에서 잊히는 것만큼은 원하지 않습니다.


삶을 잇는 기억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기억은 모두를 기억하게 하고, 모두의 영원한 죽음을 막습니다. 이 기억의 강력한 매개체는 영화에서는 음악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음악만이 가장 강력한 매개체는 아닙니다. 영화에서도 나온 사진과 더불어 글, 이야기, 장소 등 다양한 매개체가 이미 떠난 이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다양한 매개체는 계속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가끔은 그 매개체들이 밉습니다. 기억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이처럼 힘들지 않을 텐데. 하지만, 고맙기도 합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할 그 존재의 기억을 잊지 않게 해주니까. 사람은 정말 별 거 없는 동물이기에 이 기억이라는 것에 더욱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했던 사랑이라는 관계의 유일한 증거인 것은 확실하니까요.


인간은 너무도 다른 존재입니다. 그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을 불가합니다. 그래도 저는 다른 존재들에 대한 손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손을 놓는 순간, 이 세계뿐만 아니라 제 세계에서도 사라질 것 같아서. 현생에서는 볼 수 없는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 내내 펼쳐지는 그 세계에 살고 있는 제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할 사람들이 무척 오랜 기간 기억을 영위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간절히 바랍니다. 제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존재의 기억만이라도 아주 오랜 기간 이 공간과 시간을 떠돌기를. 흘러넘치는 기억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저 세상에서 내가 사랑이라는 관계를 맺었던 모든 이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