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화양연화>

by baekja

‘그냥’이라는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정말 많이 쓰입니다. 무언가를 뭉뚱그리거나 숨길 때, 혹은 잘 모르는 것을 적당히 표현할 때 이보다 편리한 단어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상태가 변화하지 않는다거나 뜻이나 조건이 없다는 원래 뜻과는 달리 ‘그냥’ 안에는 무척 많은 뜻이 숨겨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말이 가리키는 관계나 대상이 전혀 그 말의 뜻과 맞지 않을 때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그냥 친한 이웃이었을 뿐인 차우와 첸 부인의 만남의 관계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하는 <화양연화>로 표현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냥 이웃 둘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사나 이웃 모임 외에 말을 걸 일도 친해질 일도 없습니다. 서로에게 반할 일은 더욱 없습니다. 그들은 좁은 복도를 계속해서 무심하게 지나칩니다. 서로의 어깨가 닿아 피해야만 지날 수 있는 좁은 복도에서 그들은 그저 자기가 향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갑니다. 관계에 아무런 변화 없이 상태가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들의 그런 ‘그냥’의 관계를 변화시킨 것은 외부의 요인입니다.


서로의 배우자가 만나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입니다. 동병상련에서 시작된 관계는 그냥 친한 이웃에서 그냥 친한 친구로 이어집니다. 그들은 불륜을 보며 만난 관계기에 자기들은 그런 관계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사적인 만남이 하나둘씩 쌓여가며 그들은 점점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어갑니다. 그들은 그럼에도 속에서 되뇝니다. 그런 관계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제 외부에 당당하게 말할 수 없게 된 그 순간부터 그들의 관계는 이미 변했습니다. 아니, 눈빛만 보아도 스쳐지나가는 강렬함이 그들의 관계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말합니다.


그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 관계는 멀리 왔다는 것을. 그냥 이웃이 그냥 친구가 되었고, 이제 그냥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좋아하는 감정을 밝히는 차우와 이를 뿌리치지 못하며, 좋아하는 감정을 깊게 깨닫는 첸 부인의 사이는 영락없는 연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기에 그들은 갈라섭니다. 꽃이 피고 지는 순간의 아름다움처럼, 그들의 변화하는 관계는 순간에 박제됩니다. 그들의 감정은 여전히 흔들리지만, 관계는 그냥으로 돌아갑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로 들어난 관계의 발전과 끝맺음이지만, 사실 우리네 삶에서도 이런 그냥의 관계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냥 아는 사이, 그냥 아는 친구, 그냥 친한 친구. 하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앞의 말들 앞에 절대 그냥을 붙이지 않습니다. 굳이 붙일 필요가 없는 말입니다. 그냥에 함축되고 숨겨진 이야기가 조금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화양연화>의 차우와 첸 부인도 나중에 그들을 지칭할 때 단순하게 그냥 이웃, 그냥 조금 더 친했던 이웃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조금 깊이 밝힌다면 그냥 친한 친구로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이 피기 전과 진 후는 같으니까요. 하지만, 분명 순간이자 찰나일지라도 꽃은 피었다 졌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더라도 적어도 꽃만큼은 그 사실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 지는 동안 있었던 생동감 있고 활력 넘쳤으며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모든 과정들을요. 이 과정들을 ‘그냥’에 묻어두기엔 너무 아쉽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의 이야기들을 함축하여 그냥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이 이야기들을 꼭 겉으로 상세하게 표현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숨기고 싶다면 얼버무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마음으로는 깊이 그려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그 순간을 잊는 것은 너무 안타까우니까요.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 삶의 언젠가에는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지만, 그 눈물이 과거에 박제되어 현재엔 지나버린 그 이야기를 그저 그랬던 삶으로 기억하지 않게 해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