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세우는 걸 참 좋아합니다.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일단 세우고 봅니다. 많은 경우 여행의 계획은 제 몫이고, 하루에 무엇을 할지가 늘 명확히 정해져 있는 사람입니다. 늘 삶에 변수를 원하면서도 계획을 크게 흐트러트리는 변수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20살이 넘고 나서는 늘 변수투성이입니다. 제가 선택하는 결과에 따라 너무 많은 것이 변합니다. 선택과 우연이 겹쳐 새로우면서도 당황스러운 순간들을 마주합니다.
2025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백수인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평창을 갔습니다. 평창에서의 6개월이 끝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중 국가유산청 채용 창의 공고를 마주했습니다. 8월 말, 국립무형유산원의 기간제 해설사를 뽑는 공고였습니다. 9월 말에 인턴이 끝나고, 10월에 해설사 근무가 시작한다고 하니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것저것 얕게 판 것이 참 많은데 생활사가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 생활사에 가장 가까운 문화유산을 무형유산이라고 생각하기에 전부터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공부도 해보고, 가까이 느껴보기에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원서를 준비해 넣었습니다.
해설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습니다. 벤처기업에서 미친 듯이 구르며 만들어낸 대본만 10개가 훨씬 넘어갔고(5개월 간), 해 온 수업은 50회에 달했습니다. 배움과 글로만 배운 역사를 가르침과 말로 풀어나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만, 경력 많은 선생님들의 주변 도움으로 하나하나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말을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상대방의 관점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배웠달까요? 연륜이 느껴지는 선생님들의 조언은 제 해설에 피가 되고 살이 되었습니다.
경험과 의지가 실린 지원서는 합격의 문을 통과했고, 오산에서 평창으로, 평창에서 전주로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정신없는 한 해가 되리라고는 정말 상상조차 못했는데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전북특별자치도로의 이동은 제 인생에 있을 거라고 단 일말의 생각도 안 해봤습니다. 9월 중순, 여름의 끝이자 가을의 시작, 저는 전주로 향했고, 운이 좋게도 최종 합격했습니다.
평창 진부의 인턴 일기가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작성한 것이었다면 지금 쓰는 이 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인 일기입니다. 전주시민으로 산지 6개월 차 더 많은 기억을 잊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이야기를 써내려 가보고자 합니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추운 평창에서 따뜻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주에 오게 된 일들에 계획은 하나도 소용없었지만, 시작도, 중간인 지금도 제법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선생님이나 인턴이 아닌 공무직 해설사로서의 삶을 이제부터 풀어나가겠습니다. 끝나지 않은 이 이야기는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인턴의 마지막을 앞둔 한 사람의 머나먼 전주행으로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