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 대학생 국외교류 프로그램을 끝낸 어느 날. 저는 위기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더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인턴이 연도를 넘어가는 바람에 3개월밖에 못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거든요. ‘이걸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메웠습니다. 사무실에서 이제 크게 할 일도 없고, 급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국가유산청 채용공고를 찾았습니다. 다른 건 다 애매했고, 국립무형유산원 전시안내해설사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10월부터였습니다. 조건은 딱 맞았습니다. 위치도 전주. 평창에서도 살아봤는데 전주 한 번 못 가볼까. 전주는 일단 나름 대도시니까요. 뭐 그것도 일단 붙어야 생각해볼 문제니까 지원은 해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인턴에 지원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계실 선생님들 몰래 경력증명서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받고,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단 한 명한테만 미리 말해두었습니다. 저를 맨날 태워주시고, 제게 큰 도움을 주셨으며, 제 첫 사수였던 학예사님. 학예사님이 들으시고는 감사하게도 꼭 합격하라고 응원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서류는 합격했습니다. 일단 서류 자체를 넣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결격사유가 없으면 다 뽑아준 듯했습니다. 문제는 면접이었습니다.
면접은 평일, 9월 18일 목요일이었고, 청년인턴의 취업 권장 휴가(?)를 사용하여 빼야 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말씀을 드렸고, 선생님들 모두 축하해주시며 취업 권장 휴가의 규정까지 찾아주시며 휴가를 쓸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고별 회식을 9월 17일에 하게 되어서 끝까지 참여하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8시에서 9시 정도까지만 하고, 바로 오산 본가에 내려왔거든요.
선생님들께 말씀 드리기 전으로 돌아가서 제 인생 최초로 제대로 무형유산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는 거라고는 하나 없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 지도 몰라서 국가유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국가무형유산 설명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습니다. 완전 처음 보는 것도 있었고, 나름 익숙한 것도 있었습니다. 다만, 상세한 내용은 없어서 ‘이게 공부를 이렇게 하는게 맞나?’라는 생각은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면접 준비는 두 가지로 나누어서 공무직으로서의 마음가짐이나 앞으로 해나가고 싶은 것들, 그리고 무형유산에 대한 지식으로 준비했습니다. 가장 힘써 준비했던 것은 지원동기와 무형유산의 정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국립무형유산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지원할 수 있었던 데는 분명 제가 무형유산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것이 문화유산 중에는 무형유산이었고, 고정되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점도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의 미를 공부하며 공예품에도 관심을 가졌었고, 한국 무교(巫敎)의 이해 수업을 들으며 굿에도 흥미를 가졌었기에 가보면 즐겁게 해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하며 지식을 쉽고 재밌게 알려주는 해설에 대한 욕심도 점점 커졌고요.
문제는 제가 단 한 번도 국립무형유산원에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국가유산 방문자 여권 찍는 장소로만 알고 있었지 당최 거기서 뭘 하는지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때도 그랬으니까 가서 부딪혀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냅다 부딪히면 되는 것도 없으니 조금 조사를 해야겠죠. pdf 파일로 올라온 도록을 전부 읽고, 일찍 전주에 내려가 전시실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회식을 적당히 끊고 본가에 오게 된 이유였습니다.
밤의 기차와 1호선을 달려 집에 도착한 후 짐을 풀었습니다. 평창에서 살이 찔 대로 쪄버려서 맞지 않는 양복바지를 두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어머니와 같이 고민을 했습니다. 다행히 색이 비슷한 아버지의 바지를 찾을 수 있었고, 그걸 입고 가기로 했습니다. 살이 얼마나 쪘는지 전에 바지가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더라고요. 73kg 때 간신히 들어가던 바지였으니까 78kg이었던 당시는 입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잠을 잤습니다. 일어난 것은 이른 아침, 1호선을 타고, 무궁화호로 갈아타고 여행으로 몇 번 가본 적은 있으나 익숙하지는 않은 전주역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