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역에서 내려서 전주역 첫마중길로 버스를 타러 갔습니다. 한 2년 전쯤 전주역에서 버스를 탔던 경험이 있어서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전시실의 규모조차 몰라 빨리 가서 봐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가득해 빠르게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에는 사람이 많았고, 양복을 싸들고 온 저는 제법 답답하고, 무거워졌습니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습니다. 버스를 갈아탄 곳은 기린대로 현대병원 정류장, 내리자마자 매캐한 매연 냄새와 많은 차들이 이곳이 잿빛 도시임을 실감케 했습니다. 문득 제가 얼마나 공기가 좋고 푸름이 가득한 안정된 곳에 살고 있었는지가 느껴졌습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립무형유산원 앞 정류장에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전주교대 바로 앞이라는 점이 놀라웠고, 한옥마을과 가깝지만 천 건너편에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것이 바로 느껴졌습니다. 국립무형유산원은 매우 컸습니다. 건물 자체는 멋있게 지어졌지만, 그 크기와 현대성 때문에 더욱 친숙하게 들어오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시부터 면접 대기인데 10시 30분에 온 이유는 한 가지.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짐을 사물함에 맡기고 전시를 보는데 뭐랄까 건물 크기에 비해서 전시장 규모가 너무 작았습니다. 이제는 거기에 많은 사무실과 공방, 무형유산 관련자들을 위한 숙소, 회의장, 공연장이 다 섞여 있어 전시실 규모가 작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걸 몰라서 어색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생각하는 거지만, 전시실 찾기가 막 쉬운 느낌은 아니라서 상설전시실을 향해 조금 집중을 하고 찾아야 했습니다. 상설전시실에 들어가자 전시실 입구는 안 보이고, 안내데스크만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뭔 구조인가 싶어서 슬쩍 둘러보니 안내데스크 옆으로 돌아가는 구석에 전시실 입구가 있었습니다. 전시는 대중을 위한 교육 장소이자 홍보 장소인데 접근성이 안 좋아서 무척 당황했습니다. 뭐가 됐든 저는 면접을 붙어야 하니 짐을 1층 물품보관소에 집어넣어 두고, 상설 전시실 1층과 2층을 돌았습니다.
첫 인상은 ‘와 무형유산 전문 전시실이다 신기하다!’였습니다. 특히, 작년 강릉단오제를 갔다 온 지 한 3달밖에 안 되었을 때라 1층에 강릉단오제 전시를 보고 있을 때는 진짜 굿당이랑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농악 전시를 볼 때는 풍물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전시실에 사람은 없어 무척 느긋하게 전시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내용이었는데, 내용이 많지 않아 사실 제가 이미 국가유산청 홈페이지를 보며 공부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2층도 마찬가지였는데 다만, 재료 관련 부분이나 소반의 종류 관련해서는 잘 정리되어 있어서 참고할 부분들이 충분했습니다. 보면서 무형유산 자체를 다루고 있는 점은 좋았지만, 종목의 종류 구분에만 신경 써서 1층은 춤과 노래를 비롯한 예능, 2층은 전통 공예 중심으로 나열만 해놓았을 뿐 유기적인 연결을 가진 전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이야기를 덧입혀야만 조금 더 새롭고 재밌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고민을 하고,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1시,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양복으로 갈아입고 면접하는 회의실 건물 2층으로 향했습니다. 대기실에는 오늘 면접 보는 사람 두 분이 다 와 계셨고, 면접을 도와주실 학예사 한 분과 다른 직원 두 분이 계셨습니다. 긴장이 되었고, 제 순서는 마지막이라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첫 번째 분은 면접을 5분 보셨고, 두 번째 분은 면접을 10분 보셨습니다. 짧은 게 좋은 건지 긴 게 좋은 건지 분간이 안 가는 가운데 마지막 순서인 제가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청년 인턴 면접만 세 번 본 저는 면접에 어떤 질문이 나올지 대충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소개, 공무직으로서의 마음가짐과 태도의 실현, 약간의 전문지식, 경력에 대한 상세 질문. 대충 그 선에서 준비했고, 이번에는 단 한 질문도 제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자기소개는 어렸을 때부터 사물놀이를 했다는 것으로 시작, 역사를 전공하고 풍물패 동아리를 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공부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그와 가장 가까운 문화유산이 무형유산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여기에 친구들에게 줄곧 설명하는 것을 즐겨왔고, 사설 도슨트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해설하는 역할을 제대로 맡아보며 저와 무척 잘 맞는 일이었음을 강조하여 무형유산에 대한 관심과 해설사에 대한 꿈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마무리했습니다.
해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데스크에서 안내도 맡는 역할이다 보니 진상 대처에 대한 질문도 자연히 따라왔습니다. 최대한 친절히 대답을 하여 적극적인 행정으로 최대한 불상사를 막되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방호직 선생님들을 불러 대처, 그마저도 안 된다면 상의하여 경찰을 불러 상황을 종료시킨다는 원칙적인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서 쌓인 경험으로 할 수 있는 답변이었어서 6개월간의 청년 인턴 기간이 정말 헛된 것이 아니었음에 감사했습니다.
전문지식은 딱 한 가지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무형유산의 정의. 저는 무형유산을 삶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문화유산들은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만, 무형유산은 직접적으로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사람이 살아감에 따라 변화합니다. 그 변화에서 사람의 생활 관습과 더불어 희노애락을 살펴볼 수 있고, 더 나아가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거시적으로는 역사의 일부이며, 사람의 생활 그 자체로 볼 수도 있고, 가장 미시적으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가장 거대한 삶부터 가장 작은 삶을 모두 담고 있는 무형유산이야말로 사람의 삶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다음 질문은 전시실의 문제점과 그를 해결할 방안이었습니다. 전시실의 문제는 위에서 파악한 것처럼 정보의 나열일 뿐인 전시였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토리라인을 구성하여 새로운 해설을 구상하고, 말하는 것을 방안으로 내세웠습니다. 전시실의 설명은 개괄적인 설명밖에 없는데 보유자와 연결하여 그와 관련된 역사와 재밌는 이야기들을 해설 속에 녹여낸다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서 더욱 입체적인 체험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마지막은 경력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해설을 어떻게 했는가? 혹은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는 해설사가 없는데 거기서 어떻게 해설 경험을 쌓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사설 도슨트했던 경험을 살려 공감의 마음으로 관람객의 수준에 맞춘 해설을 해왔고,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해설사가 없었기 때문에 종종 일반 관람객에게 하는 해설을 청년 인턴인 제가 도맡아 했다고 했습니다. 국외교류프로그램에서 행했던 창경궁 해설이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도 같이 곁들였습니다.
이렇게 면접을 하고 나니 15분이 걸렸습니다. 평창에서보다는 훨씬 잘 봤지만, 진짜 잘 봤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일단 궁금증을 안고 서울 가는 버스에 탔습니다. 그리고 서울 가는 버스에서 합격 전화를 받았습니다. 주소지가 평창으로 되어 있어서 빨리 알려주어야 할 것 같아 전화를 거셨다고 했습니다. 진짜 올 것이냐고 묻는 학예사님의 질문에 저는 냉큼 이야기를 받아 갈 것이라고 답했고, 그렇게 합격되었습니다.
이후에 들었던 이야긴데 앞의 첫 번째 분이 석사에 이미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인턴을 해서 사실 이기기 힘들 거라고 다들 생각하고 계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냥 말 그대로 면접에서 이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신기했습니다. 잘 풀리면 이렇게도 되는구나. 국립제주박물관 면접 때는 진짜 잘 봤다고 생각했다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전주는 망하지는 않았다 정도였는데 붙어서 뭔가 얼떨떨했습니다. 서울에서 평창으로 가는 길에 빵을 잔뜩 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합격 소식을 알리며 빵을 전부 돌렸습니다. 이제 저는 일 년 만에 경기도에서 강원특별자치도,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전북특별자치도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정말 역마살이 끼었다는 생각밖에 들었지만, 여전히 박물관에서의 경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은 무척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