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지를 평창에서 전주로

by baekja

평창에서 전입신고를 처음하며 20년 넘게 오산에 있던 주소를 처음으로 옮겨봤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고, 저는 평창 주소를 전주로 넘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국립무형유산원 지원을 할 때 주소지가 평창으로 되어 있어서 도대체 왜 평창 사람이 지원을 했는지 다들 걱정이 많으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주소지가 평창은 맞지만, 본가는 그곳이 아니니 그다지 걱정할 일은 아니었지만요. 사실 저 빼고 다른 해설사 분들은 전주에서 살았거나 살고 계신 분들이니 전주에 적이 하나도 없던 사람은 저밖에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신기하기도 할 만합니다.


평창과 달리 전주의 집은 상태가 제법 괜찮은 것을 확인했고, 청소도 그리 많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하루 전 날에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들어간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있으시면서 청소를 도와주기로 하셨고, 안 된 거는 제가 그냥 천천히 하기로 했습니다. 9월 30일 아침 해가 밝자마자 본가 오산에서 전주로 출발했습니다. 2시간 정도를 달려 아침부터 먹었는데 계약 체결을 할 부동산이 현대옥 본점 근처라 거기서 먹기로 했습니다. 현대옥 본점은 국밥집이라고 하기엔 세련된 느낌이었습니다. 맛이 엄청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적당한 맛이었습니다. 전에 먹었던 남부시장 현대옥이 더 제 취향이었습니다. 나와서는 콩나물 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콩나물과 아이스크림의 절묘한 조합이 정말 애매했습니다.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딱 상상한다면 존재한다면 그 맛일 것만 같은 맛. 그런 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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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가서 계약 체결을 하고, 그때 봐두었던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서 잠시 국립무형유산원(이하 유산원)에 들려 계약서를 썼습니다. 하루에 두 번이나 계약을 하니 진짜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실 29이면 어른이 확실히 맞는데 말이죠. 아직 가끔 20살 초반의 애 같은 때에 머물러있는 느낌입니다. 계약서를 가져와서는 청소를 좀 하다가 남부시장에 갔습니다. 전에 왔던 경품 추첨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제 운수가 늘 그렇듯 가볍게 떨어졌습니다. 매번 뽑기만 하면 멸망이더라고요. 어쩌겠습니까 제 팔자인 것을. 운칠기삼인데 운칠이 없으니 기삼에나 열심히 기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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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경품 추첨을 구경하고 집에 와서 다시 청소를 했습니다. 청소가 어느 정도 끝난 후에는 바로 옷을 정리할 행거를 설치했습니다. 옷장과 행거가 모두 있던 평창 집과 달리 행거가 없는 전주 집은 제가 직접 행거를 설치해야 했습니다. 복잡한 설명서와 각종 부품들이 있었지만, 원리는 단순했습니다. 길이 조절해서 구멍에 봉을 연결하고 나사로 고정. 그렇게만 하니까 나름 그럴듯한 행거를 인생 처음으로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몰려오더군요. 부품들이 이것저것 많은 덕에 설치하고 남은 부품은 여전히 방 한쪽 구석에 모여 있습니다.


행거를 빠르게 설치하고, 전입신고를 하러 갔습니다. 집은 동서학동 주민센터에 가까운데 주소지가 서서학동으로 되어 있는지라 서서학동 주민센터로 갔습니다. 아직 기본소득을 나누어줄 때라 그것 관련 민원인들이 들어오고 있었고, 제 전입신고는 조금 뒤로 밀렸습니다. 전입신고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면에서 동으로 이사를 왔다 보니 전처럼 쓰레기봉투 같은 것은 받지 못했습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넘어왔다는 것이 체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주민등록증 뒤에는 이제 평창 주소에 이어 전주 주소가 하나 더 찍혔고, 저는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서서학동의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렸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아저씨가 됨을 숨기지 않는 친구들이 DM으로 앉아서학동이라느니 서학은 있는데 동학은 없으니 매국노라느니 하는 말들을 제게 보냈습니다.


가볍게 웃으며 집에 들어가 저녁 청소를 마무리하고, 어머니와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은 짜장면이었습니다. 역시 이사할 땐 짜장면이죠. 사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곳이 그곳이라 거기 가서 먹었습니다. 맛은 나쁘지 않았는데 나중에 먹어보니 유산원 근처에 짜장면과 짬뽕이 더 괜찮은 집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맛이 좀 달라서 그냥 번갈아가면서 먹고 있습니다. 어머니께 저녁까지 사드리고 나니 확실히 어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그 기분이 참 오묘하여 저녁 먹고 오는 산책길은 조금 달떠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뒤로 하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일찍 잠에 들었습니다. 전주시민으로서의 첫 날이 지나갔습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