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칼럼] 타이키 - 오뎅의 정의를 다시 쓰다

“클 태, 빛날 휘”라는 이름을 건, 작은 국물의 철학

익숙함을 넘어, 오뎅이라는 장르를 다시 묻다


‘오뎅’이라는 단어는 한국 사람에게 지나치게 익숙하다. 익숙함은 때로 본질을 흐린다. 간이 포장마차에서 흔히 마주치는 스티로폼 컵 속 어묵 국물, 값싸고 따뜻한 거리의 간식.



그러나 그것은 원형의 일부일 뿐, 오뎅이라는 음식의 기원은 훨씬 더 복잡하고 깊은 문화적 층위를 지닌다. 일본 무로마치 시대(14~16세기), 오뎅의 초기 형태는 ’덴가쿠(田楽)’였다. 된장을 바른 두부나 곤약을 꼬치에 꿰어 구운 음식. 이것이 에도 시대에 들어 국물 요리로 변화하며 오늘날의 오뎅 형태가 되었다.



지역에 따라 국물의 베이스가 다르고, 구성 재료도, 간의 정도도, 고명과 소스의 방향성까지 모두 달라지는 장르. 오뎅은 일본 나베 문화 중에서도 특히 서민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구조적인 요리다.


오뎅을 ‘먹는 공간’으로 다시 정의한 곳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유행의 밀도가 짙은 이 골목의 한켠, 네온사인에 ’おでん(오뎅)’이라는 단어를 담아 조용히 불을 밝히는 곳이 있다.



그곳의 이름은 ‘타이키(太輝)’.

사장인 김태휘 씨의 본명이자, 그의 철학을 담은 상호다. “클 태, 빛날 휘”라는 뜻처럼, 이 작은 공간은 진심과 손끝의 감각으로 음식의 온기를 빛낸다.



김 사장은 요리학교 출신이 아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직장생활을 하다 이자카야를 창업했으며, 돈카츠 가게를 거쳐 지금의 타이키에 이르렀다. 그는 음식이란 손으로 전하는 감각의 연장이라 믿는다. 요리는 그에게 있어 디자인의 또 다른 형태였고, 지금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식사를 ‘디자인’하고 있다.


사적인 취향으로 축적된 오뎅의 집



오뎅은 그에게 장르 이전에 기억이다. 일본 전역—도호쿠 지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여행하며 이름난 오뎅집을 직접 찾아다녔다. 몇몇 집은 여러 번 반복해 찾았고, 종업원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기도 했다. 기록하고 맛을 떠올리며 자신의 방식으로 구성한 결과가 지금의 타이키다.

“정통의 오뎅과 약간의 변칙을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라는 그의 말에는 겸손과 태도가 있다.



예컨대 이곳에서는 유부 안에 부드러운 두부를 가득 채우고, 무는 적당한 결을 유지한 채 단맛을 살리며, 우엉과 곤약은 식감의 대비를 맡는다.



그리고 고명과 타래(소스)가 얹혀지며 오뎅은 하나의 접시 위에서 다양한 온도로 구성된다.


국물이라는 구조, 그리고 재료와의 관계


“다시와 잘 어울리면 그게 오뎅입니다.”


타이키의 철학은 이 문장에서 시작된다.



오뎅은 재료 그 자체보다도, 국물과 맺는 관계로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 각각의 재료는 주연이 아닌 앙상블로 존재하며, 바 좌석에서 한 입 한 입 올라오는 국물의 여운은 마치 작은 다이닝처럼 촘촘하다.



특히 계절마다 바뀌는 구성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삭하게 구운 크루아상 오뎅은 일본 한 지방에서 착안한 메뉴로, 버터를 얹어 토치로 살짝 그을린 후 뜨거운 다시 속에 담긴다. 디저트처럼 보이지만 국물의 밀도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진지한 메뉴. 이 작은 변칙이 타이키의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그릇’이라는 연출, 식기의 언어


타이키에서 식기는 그저 음식을 담는 도구가 아니다. 김 사장은 “음식의 옷은 그릇입니다.”라고 말하며,


일본 각지의 도자기 마을—사가현 가라쓰와 아리타, 기후현 오리베, 시노, 오카야마의 비젠, 이시카와의 쿠타니—를 직접 돌아다니며 식기를 수집했다. 때로는 작가에게 연락해 산속 가마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에게 있어, 그릇은 온도와 촉감, 빛과 명도의 균형이 응축된 조형물이다. 그는 음식을 그릇 위에 올리는 순간, 절반의 연출이 끝났다고 여긴다. 타이키의 국물은 그릇과 함께 음미되어야 한다.



사케, 잔술의 미학


이곳에서는 사케도 병이 아니라 잔으로 제공된다.


일본 대부분의 요리집처럼 1합(180ml) 단위로 나오는 이 잔술은, 한 사람의 미각을 천천히 열어가는 방식으로 제안된다.



드라이 계열인 카라구치로 입을 열고, 아마구치의 부드러운 단맛으로 넘어가며, 때로는 쌀 품종이나 효모가 다른 사케로 확장된다.



김 사장은 말한다. “술을 팔고 싶다기보다, 본인의 취향을 찾게 해드리고 싶어요.” 잔술 큐레이션은 미각의 전개이자, 이 공간만이 가능한 정밀한 미식 체험이다.


디자인으로 완성된 사적인 공간


이 작은 공간의 구조는 철저히 사적인 감각으로 연출되어 있다. 입구에 걸린 붉은 노렌은 그가 손바느질로 직접 만든 것이고, 내부에 걸린 그림도 모두 김 사장이 그린 것이다.



음악은 엔카나 일본의 올드팝으로 채워져 있으며, 바의 좁은 폭은 손님과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좁힌다. 이곳에서 식사란 단순한 섭취가 아닌, 감각의 공유에 가깝다. 그는 말한다.

“작은 가게일수록 운영자의 색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이키는 그의 손끝과 취향, 그리고 기억이 구현된 하나의 공간이다.


어릴 적 추억으로 완성된 메뉴


메뉴판 마지막 즈음, 익숙하면서도 기분 좋은 충격을 주는 접시가 등장한다.



일본 캐릭터 접시에 담긴 스파게티. 고기와 토마토의 질감이 살아 있는 볼로네제 소스 위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가 풍성하게 뿌려진 이 한 접시는, 사장님이 어릴 적 먹던 경양식의 추억에서 시작되었다.


이 집의 오뎅이 정교한 감각과 진심의 맛이라면, 스파게티는 그의 사적인 기억이 식탁 위로 올라온 것이다.


다시 찾게 되는 이유


“핫한 곳이 되고 싶진 않아요.
반짝 주목받고 사라지는 가게 말고,
오래도록 함께하는
단골이 많은 가게가 되고 싶습니다.”


김태휘 사장은 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타이키는 지금 서울에서 가장 ‘핫한’ 오뎅바 중 하나다.



다만 그 ‘뜨거움’은 유행의 속도가 아니라 신뢰의 밀도로 쌓인 것이다. 이곳은 우리가 식탁 위에서 진짜로 찾는 것이 무엇인지, 왜 어떤 음식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지를 조용히 되묻게 한다.



정제된 손길, 단단한 철학, 그리고 그 안에서 태어난 온기의 맛.


타이키는 지금, 서울에서 가장 섬세하고도 진심 어린 한 그릇을 내는 오뎅바다.


*이 글은 언론사에 기고했던 칼럼을 바탕으로 재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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