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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이 Nov 12. 2024

[닻도 끊고 노도 잃고]

   13번 시내버스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버스 안은 숨쉬기조차 힘들다. 언제부터였는지 바다를 찾아 답답한 일상을 떨친다. 한 달에 두 번 맞는 휴일은 혼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안긴다. 해운대는 사람들이 북적거려 멀리하고 태종대가 안성맞춤이다. 도심을 벗어나 대교를 지나면 밀려오는 바다 내음이 일주일의 답답함을 녹여 주는 듯하다.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태종대 공원 순환길로 향한다. 연인들은 서로 손 잡고 사랑스러운 눈짓을 나누고,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웃음 짓는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노도 잃고 닻도 끊고 농총도 걷고 키도 빠진’ 배처럼 바람 불고 물결치고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갈 길은 천리만리…. 걷고 또 걷는다. 마주한 곳은 너럭바위다. 홀로 해안으로 삐져나온 모습이 처연하다. 발아래 굽어보는 파도는 두 발을 올린 사마귀가 먹이를 다투듯 끊임없이 바위에 부딪친다. 밀려갔다 되돌아와 끈질기게 때리기를 반복한다. 힘겨운 나의 마음에 생채기를 보탠다.

    이제는 지쳐 발걸음을 아래로 아래로 재촉해 자갈 마당으로 옮긴다. 맨발에 닿아 사각사각하는 소리와 파도에 떠밀려 촤르르 촤르르 들려주는 화음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드나드는 파도를 손으로 받는다. 어루만지는 무수한 물결을 마주하고 자리를 잡았다. 하얗게 자리매김하는 포말은 정리되지 않는 꿈을 풀어헤친다. 다양한 파도처럼 삶도 복잡하다. 인생의 출발선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듯 펼치지 않은 도화지 묶음을 움켜쥐고 서 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인생의 앞날과 마주한다. 멀리 수평선 너머 수많은 배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목적지가 어딘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슴을 후빈다. 파도에 부딪혀 일렁이는 물결 수만큼이나 머릿속이 엉긴 실타래다. 큰 바위가 굴러 쪼개지고 닳아 자갈이 되고 한 줌의 모래가 되기까지 숱한 여정이 흘렀으리라. 고난과 아픔이 점철되면 또 다른 옹이가 만들어지리라. 작은 돌탑을 쌓아 올리며 흩어지는 물방울에 꿈을 담아본다. 품에 안기는 바다 기운이 마음을 채찍질하는 듯하다. 도시에 갓 정착한 청년의 마음은 버겁다. 다람쥐 체바퀴 돌듯 정해지지 않은 목표를 옭아매는 일만 기다린다. 자갈 마당은 꿈을 꾸는 미지의 세계다. 젊음의 파도와 함께 꿈과 정신을 넓혀 간 나만의 바다요. 한때의 꿈을 좇고 열정을 이끈 안식처였다.

    자갈 마당의 품은 차갑고도 뜨거웠다. 햇살에 영글어가는 벼이삭처럼, 꿈을 키우고 매서운 아픔을 새길 때도 파도가 일렁이는 자갈 마당을 걸었다. 안정된 삶을 이어 가는 오늘 그때의 나를 돌아본다. 이제는 장년의 삶을 엮어간다. 어떤 삶이 행복할까? 세상은 변한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달라진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오는 세월에 어떻게 적응을 해 나갈지.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세월은 비켜가지 않아 어느덧 은퇴를 하였다. 바다와 함께 달려온 시간은 녹록지 않았다. 이제는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다. 다대포 바다가 대신 안아 주었다. 부족함을 채워주고 편안함을 누리는 가족이 함께한다. 서로를 위로해 준다. 장년의 삶을 가족의 힘으로 만들어 가고자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삶을 해보려 한다. 오늘의 준비가 내일의 활력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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