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변화를 한다. 태어나서 부모님의 양육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시골 아이는 꿈을 키워 나간다. 징검다리를 건너고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먼지 내뿜는 신작로가 나오면 학교 가까이 왔음을 안다.
큰 비가 비리는 여름은 두려운 등굣길이다. 징검다리가 불어난 물에 잠기고 세찬 물살에 발을 내밀지 못한다. 부모님이 업어다 건네어주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럽기만 하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동네 형들을 따라 산길을 걸어간다.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는 이웃 마을을 돌아 늦게 학교로 향한다.
초등학교 도서관은 몇 권 되지 않는 오래된 책으로 채워져 있었다. 문이 열려 있는 시간에만 들어갈 수 있다. 도서관 복도 입구에 걸려 있는 액자 속 사진 한 장에는 어른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어린애를 부드러운 웃음으로 맞이한 저 사람은 누굴까? 수업이 끝나고 학교를 나오면 집으로 가는 개울가에서 물장구치고 노는 즐거움과, 산으로 들로 토끼몰이에 나서는 오후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동네마다 상급생이 깃발을 들고 저학년들은 줄지어 졸졸 따라 걷는 모습은 학교 가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성인이 되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접하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초등학교 도서관에 걸린 사진을 떠올린다. 현장에서 기다려주고 도움을 주는 안내자의 역할이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조급함에 아이들에게 재촉하고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 함께 하도록 강요해 왔다.
어린 시절 학교 복도에 걸려있는 한 장의 사진 속 인물인 스위스의 페스탈로치는 ‘교육만이 사회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생을 바친 분으로 나의 삶 켜켜이 쟁여 왔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삼십 여 성상을 지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연인이 된 지 2년이 되었다. 현장을 한 발짝 물러나 돌아본 세월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일주일에 삼일 정도는 공공 기관에서 행하는 평생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인생의 후반부를 즐기고 있다.
또 다른 길을 찾다가 인연이 되었다. 읍 지역 학교에 강사 자격으로, 학생들에게는 선생님으로 다가 가 또 다른 보람을 이어간다. 일주일에 이틀 아이들을 만난다. 첫 주는 약간은 낯섦이 있었으나 동료 선생님과의 친분이 쌓이면서 편안함이 생겼다. 교실과 복도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귀여움과 반가움이 크다. 대도시와 여러 가지 비교되는 여건이지만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는 아이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일 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새롭게 도전을 한다. 이전보다 여유를 갖고 기다려 주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지금까지 보낸 조급함은 멀리하고 그 옛날 초등학교 사진 속의 그분을 떠올리며 닮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의 시간이 소증 하다. 언제 다시 오늘과 같은 만남이 또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재능을 함께 할 수 있는 나눔의 길을 누려보는 즐거움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지금의 자리를 마련해 준 배려에 감사함을 가진다. 남은 시간 주어진 역할과 내가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높여 수업 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에게 녹여보려 한다. 이전에 성숙하지 못하고 서툴게 행했던 가르침의 장에서 늦었지만 아쉬움을 조금씩 줄여 나가고자 한다.
가르치는 입장과 가르침을 받는 처지를 바꾸어 본 시간이다. 교육은 끝이 없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 배움은 지속해 가려한다. 상대를 배려하면서 피교육자의 조력자로서 교학상장하는 서로가 되어 보자 다짐을 한다. 보살핌을 함께 해보자. 무한한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