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에 공기가 데워져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힌다. 토요일 어머니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 간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이틀 전부터 열도 있고 폐렴 증상이 보인단다. 바로 달려가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맞이하는데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다. 긴 호흡으로 눈을 뜨려고 애쓰는 것 같은데 눈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주치의는 자리에 없고 당직 의사의 소견으로 대학 병원 응급실 전원을 타진한다. 어머니의 산소 포화도가 낮다. 산소호흡기 도움으로 숨을 쉰다. 담당 간호사가 항생제를 투여했고 경과를 보면서 좋아지기도 한다는 그 말을 믿고 병실을 나서 집으로 돌아와 일상에 접어들었다.
이틀이 지나 다음날 강의 준비를 하기 위해 지방으로 가는데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가 돌아가셨단다. 터널에 접어들어 자동차를 돌리려 해도 마음만 조급해진다. 터널은 왜 이리 긴지. 바쁜 마음은 아랑곳없이 어두운 동굴 속에 자동차 불빛만 쫓아 달린다. 터널을 나와 자동차를 병원으로 향하는데 퇴근 시간에 맞물려 앞차의 브레이크 등 불빛만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며 움직인다. 전화를 받은 지 한 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하였다. 지하층으로 달려가 맞이한 어머니의 몸은 온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이동용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에 가슴 위 돌덩이가 내려앉는다. 먼저 도착한 두 동생이 엄마의 손과 얼굴을 쓰다듬고 있다. 누구도 임종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다. 기나긴 가시밭길의 여든일곱 해를 마감한 것이다.
119의 도움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지 육 년이다. 처음 삼 년은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식사도 하고 간단한 의사 표시도 주고받았다. 그런데 코로나 19가 닥치면서 어머니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창 너머 예약 면회가 이루어졌을 때 만난 어머니의 모습은 콧줄에 의지해 유동식으로 나날을 이어간다. 의사 표시는 따로 없다. 그저 ‘와’, 하고 대답하는 정도일 뿐이다.
사람의 목숨이 순간이다. 가족 누구도 어머니의 임종 앞에 같이하지 못했다. 그나마 작은 여동생이 돌아가시는 날 몇 시간 전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운명했다는 연락을 받고 자동차를 몰아 병원에 도착한 후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뿐이다. 장례식장을 먼저 알아보고 절차를 따르는 일이다. 장례 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시신이 안치되고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장례 준비가 시작되었다. 친척과 부음을 전할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화장장 예약에 어려움이 있다. 이곳은 이미 접수가 끝나 인근 시 지역으로 서두른다. 결국 고향 가는 방향에 있는 시립화장장으로 예약이 되었다.
영정 사진은 언젠가 꽃구경 갔을 때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으로 했다. 1층 사무실 가는 길에 우연히 보게 된 여러 호실의 영정 사진 중 오로지 어머니만 웃고 있는 얼굴이다. 마지막은 고통스러웠겠지만, 손님을 맞이하면서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만 봐도 침울한 분위기를 바꿀만하다. 첫날은 가족끼리 장례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분향실에서 밤을 새운다. 내내 향을 이어 피우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날이 밝았다. 열 시경 입관이 예정되어 있다. 안치실로 내려가 장례 지도사가 입관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삼베옷을 입은 어머니의 차가운 얼굴을 손으로 감싸 안는다. 오늘이 지나면 영영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지난한 시절을 보낸 어머니의 삶이 눈에 어린다. 저절로 울음이 밀려오고 수도꼭지를 열어 놓은 듯 눈물이 솟구쳐 얼굴을 타고 내린다. 입관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서럽기가 그지없다.
오후가 되면서 조문객이 밀려든다. 음식 관리는 도우미에게 맡기고 아들과 딸이 손님 식탁을 오가며 부족한 것들을 채워준다. 아들의 입이 튀어나온다. 사람을 더 부리지 않아 고급 인력이 혹사당한단다. 밤늦게 사촌 동생들이 도착했다. 나의 마음과는 달리 식탁에 앉아 자리 차지만 하는 것이 목덜미를 잡게 만든다. 밤 열 시를 넘기면서 한산해졌다. 문상객들과 맞절을 하면서 오늘은 운동량이 아주 많아졌음을 확인된다.
오 남매가 모여 조의금 정리를 한다. 각자의 문상객 봉투를 확인하면서 공동 경비를 내기로 했다. 돈이 일을 한다. 장례식장에 남은 실이 특실뿐이라 이틀간 비싼 숙박료를 지급하였다. 화장장 예약이 관외라 발인 시각이 아홉 시로 정해졌다. 제를 지내고 관을 운구하는데 또 눈물이 난다. 출발에 앞서 화장장에서 필요한 서류를 챙겨 어머니 인생길의 마지막 떠날 준비를 한다.
한 시간여 달려 도착한 화장장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삼십 여분이 지나 어머니의 차례다. 4번 고로에 배정이 되었다. 몇 시간 후면 육신은 사라지고 한 움큼의 재로 남게 될 것이다. 유골 수습실 문이 열린다. 눈앞에는 어머니의 쇠약해진 몸은 오간데 없고 사그라든 뼈 흔적만 보인다. 울음을 머금는다. 직원이 유골을 수습하여 분쇄기로 쏟아 넣는다. 기계음이 멈추자 뼛가루만 한지에 담겨 상주에게 건네진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지만 한 줌 뼛가루로 남은 어머니의 흔적에 가슴속 울음소리는 높아진다.
장지로 떠날 시간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오래전에 자리 잡은 선산이다. 마을로 접어드는 길에 다다르자 그 옛날 아버지가 병으로 숨을 거두어 영구차에 실려 고향 마을로 들어갈 때의 울부짖음이 밀려온다. 마을 입구 개울 건너로 영정을 앞세우고 산을 오른다. 비가 온 지 오래되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산소에는 산 꾼들이 땅 파기를 해 놓았다. 아버지 무덤 허리쯤을 파내고 화장한 어머니 뼛가루 뭉치를 넣고 흙을 덮는다. 큰 상주, 둘째 상주, 뒤이어 참석한 이들의 의식이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잔디를 붙이고 묘지 마무리를 한다. 준비한 제물을 펼쳐 절을 올린다. 장례 절차 중 마지막 과정이다. 미수를 앞둔 어머니의 삶이 끝났다. 사람 사는 세상에 죽고 사는 일이 계획처럼 되지 않기에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스쳐간다.
아버지 옆에 어머니를 묻고 고향을 떠난다. 부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잊은 채 소리를 눌러 울음을 토한다. 고속도로로 접어들 때까지 멈출 줄 모른다. 어머니의 마지막 생을 되돌아본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이후 몸이 점점 쇠약해지고 음식조차 삼키지 못하는 시간이 왔고, 의사 전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년여 이상을 콧줄로 연명해 온 사실이 눈물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입원하기 전까지 한 주 걸러 어머니를 찾아 쇠고기 국거리라도 끊어 따뜻한 밥 한 끼를 드실 수 있게 한 게 전부다. 돌이켜보면 부족한 첫째 아들로 어머니를 보살피지 못한 것이 많다. 동생들을 바람직하게 이끌었는지 되돌아본다. 어머니의 정을 떠올린다. 사십 대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막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나이에 불과한 오 남매를 둔 가장으로서 숱한 과정을 헤쳐 나왔다. 이제는 다 잊고 먼저 간 아버지 만나 그간의 해후를 기원해 본다. 부부가 함께 한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세월이 길어 서로 알아볼는지.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간 원망과 회한을 남편의 넓은 가슴팍에 기대어 타박이라도 해 보셔요. 어머니! 아픈 몸과 마음 훌훌 떨치고 남은 가족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의 영면을 빕니다. 어머니, 어머니! 벌써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