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손에 잡힌 책을 보거나 주요 관심사를 다룬 책을 선택해서 읽는다. 기껏해야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의 권 수다. 직장 생활에 쫓겨 시간을 핑계로 책과 담을 쌓았다. 단지 업무에 도움을 받고자 겨우 펼칠 뿐이다. 나 또한 책을 읽지 않는, 책과 멀어져 있다.
독서 모임 참여를 계기로 토론에 주어진 책을 도서관이나 전자책으로 찾아본다. 보고 싶고 읽고 싶은 도서에서 벗어나 여러 분야의 책을 접한다.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는 것에서 골고루 섭취하는 수동적 자세로 바뀌었다. 가끔은 책을 펼치다 덮기를 반복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하루를 넘기지 않고 마지막 책장까지 마음에 담기도 했다.
매월 주어진 도서를 몇 개월 전에 읽어야 마음이 놓인다. 눈에 띄는 문장은 노트에 옮겨 적는다. 작가가 남긴 어휘를 곱씹는 시간이 따로 뒤따른다. 도서관에서는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 흥미롭다. 비판과 공감, 동의와 의견 제시가 시간이 모자라 연장되는 일이 잦다. 일정에 밀려 아쉬운 만남을 다음으로 미룬다. 차 한잔의 여유가 점점 책 속에 파묻히는 계기를 만든다. 개방형 서고 십진 분류표에 꽂힌 책 중에는 또 다른 관심을 불러온다. 총류부터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혹에 스며든다. 신간 도서 코너는 언제나 발길을 오래도록 머물도록 한다. 날마다 늘어나는 책에 소화력이 못 미쳐 포만감을 넘어 소화 불량 상태다.
독서는 왜 하는가. 지적 호기심을 채우거나 여가 활용과 정보 이용 등등 개인에 따라 집중되는 것은 달라질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읽는 것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서 자신의 글쓰기를 비추어 본다. 문장 다듬기와 낱말 선택에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내 글이 어떤 판단을 받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책 읽기가 오히려 글쓰기를 억누르는 경우도 생긴다. 아니 부담감을 가진다. 내 글을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다듬고 되돌아보면서 관찰하는 계기로 만든다. 작은 일에도 주변 사건이 관심으로 다가와 글감으로 자리 잡는다. 주변에서 일어난 하나하나가 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스스로 다짐한 나와의 약속은 2년째 이어진다. 어떠한 경우라도 일주일에 한 편씩의 글은 완성해 나간다. 다듬고 다듬은 글은 컴퓨터 저장을 넘어 웹에 올려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곱씹는다. 그나마 일정량 되살려 낼 수 있어 과거를 더듬어 또다시 꺼내고 활자화시키는 시간을 줄인 것으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일찍이 저장 매체 관리가 소홀해 그동안 풀어낸 자료를 한순간 날린 적도 있다. 마음이 오래도록 다듬어지지 않았다. 어디부터 다시 되짚어 나가야 할지 결정을 미루었다. 다행스럽게도 메일에 지난날 흔적을 좇고 종이 출력물을 뒤적이면서 전체 글의 반수는 긁어모으게 되었다. 기억의 조각들이 되찾아질 때마다 울컥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렇게나 아픔이 켜켜이 다가선다. 이런 고통의 순간은 누구나 겪는 일 중의 하나다. 다시 반복되는 어리석음을 막고자 복수의 저장 장치와 웹 하드까지 동원시킨다.
글 쓰기보다 외부적인 일로 시간과 마음의 생채기를 얻었다. 지금부터는 오로지 글쓰기에만 집중한다. 오늘의 경험과 지난날의 추억이 컴퓨터 자판에 옮겨진다. 일정 시간마다 글쓰기 동호회에 모인 사람들과 글을 공유한다. 그들의 생각을 듣는 시간이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안긴다. 다른 사람의 글을 평가하는 것도 어렵고 나의 글을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내보이는 일도 용기가 필요한 듯하다.
얼마 전 플랫폼으로 올린 글에 방문한 몇 명이 댓글을 남겼다. 글의 제목이 문제였다. 예상한 바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 제목이 시비 거리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도 수정 없이 밀고 나갔다. 다양한 의견 중에 긍정적인 내용과 비난하는 글이 뒤따른다. 예상한 일이라 개의치 않으려다 몇 시간 만에 수정하였다. 글이 내 생각의 조각들이 모인 것이지만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었다면 생각해 볼 요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단어 선택에 고민과 생각의 깊이를 다짐하게 되었다.
오늘도 책장을 넘기며 가끔 낯선 문장이 노트에 담긴다. 책 읽기는 글쓰기의 밑거름이 된다. 몇 년째 지속된 독서 동아리 참여는 책 내용을 넘어 각자의 다양한 삶을 꾸려내는 개개인 삶의 모습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중간중간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는 가정과 가족 관계를 슬며시 내 보인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세대를 달리하며 세대를 뛰어넘는다. 서로의 생각을 하나로 묶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양분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웃음이 모아지기도 하고 가끔 눈물샘이 터져 말 잇기에 앞서 주변 사람들의 얼굴부터 챙기게 된다. 경험은 한정되기 마련이다. 서로의 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영양가 없는 관계들을 정리할 필요도 있다. 관계가 힘이 되는 존재이기도 하고 짐이 되는 관계이지 않는가.
자신과의 싸움이다. 경험이 날 줄과 씨 줄로 묶여 한 벌의 완성품을 짓는다. 기쁨과 만족, 자아 발현을 위한 책 읽기와 글쓰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깊이 있고 생각을 넓혀가는 읽기와 쓰기로 날짜가 쌓인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 가는 성숙한 내일을 채워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