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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이 Nov 05. 2024

[이틀 전, 고갯짓 하는 뽀미 ]

   오늘도 전화기에 아들의 목소리와 함께 손주의 모습이 비친다. 구백 리 떨어진 수도권에 살림을 난 지 삼 년째다. 손주가 쑥쑥 커 간다.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멈추고는 갑자기 목 고개를 바닥과 수평으로 돌려 방긋 웃는다. 이쁜 짓, 나름 애교를 발사한다.  거실 소파에  손을 짚고 일어서서 이리저리 기대어 본다. 엄마, 아빠, 할미라는 두 세 마디를 안긴다. 하루하루가 다른 성장세다.

   이틀이 멀다 하고 영상으로 만나는 손주지만 두 손으로 안아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  아내는 아들 집에 챙겨 갈 물건들을 준비한다. 양념 몇 가지와 배추김치를 담는다. 정성이 듬뿍 들어가 맛깔스럽게 만든다. 여기에 더해 돼지고기 수육이 솥에서 익어가는 냄새가 입맛을 당기게 한다. 가방에 짐을 챙기는데 하나로는 어림도 없어 어깨에 메는 작은 가방이 더해진다. 누가 보면 멀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모양새다. 손길이 빨라진다. 기차표 예매한 시간까지 여유가 별로 없다. 현관을 나서기 전 집안을 두 눈으로 한 바퀴 둘러본다. 습관처럼 전기 콘센트와 창문 여닫이를 확인하였다. 두 손이 모자라 어깨에 가방을 둘러멘다.

   이틀 전 터미널 근처 귀금속 가게를 찾아갔다. 백일 기념품 준비 때 들렀는데 달라진 것이 많았다. 한 돈의 가격이 30%나 올랐다. 지갑을 열어 반지와 팔찌를 구매한다. 첫 손주라 망설임 없이 큰돈을 들여 보증서와 함께 금붙이를 손에 넣었다. 앙증맞은 아기의 손에 반짝이는 가락지를 끼워 주는 손짓을 상상한다.

   기차역에 도착하였다. 출발 시간까지는 십 분 정도 남았다. 짐 꾸러미 때문에 차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가득했다. 짐칸에 가방을 올리고 자리에 앉는데 기차가 움직인다. 손주와 얼굴을 마주한 지 한 달 만이다. 추석 명절 이후 품에 안아볼 수 있는 시간이 가까워진다. 멀고 먼 길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길이면 보고 싶을 때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달려갈 일인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두 시간 반을 달려 기차역에 내린다. 문이 열리고 짐을 챙겨 발을 내딛는데 아들 얼굴과 마주한다. 일전에 가족 단톡 방에 올린 기차표를 보고 마중을 나와 있다. 등과 어깨를 토닥이며 부자간 인사를 건넨다. 서운한 듯 아내도 아들과 서로 껴안고 눈을 마주한다.

   지하 6층 기차 정거장에서 이동 통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뗀다. 아들이 자동차 문을 열고 짐을 싣는데 뒷자리에 꼬마 손님이 우리를 반겨준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긴 여행의 피곤함을 잊게 만든다. 손주는 웃음과 함께 알아들을 수 없는 표현으로 돌고래를 떠올리는 높은음을 만들어 우리를 맞아준다. ‘가을철 하루 볕이 무섭다’고 한 달 만에 접하는 아기는 신체와 더불어 성장해 가는 하나하나가 자식을 키울 때와는 다르게 새롭게 다가온다. 십 여분을 달려 아들 집에 도착하여 며느리의 환영을 받는다. 화장실로 달려가 손부터 씻는다. 손주를 안아볼 요량으로 아내보다 먼저 비누 칠을 한다. 아기의 부드럽고 고운 살결이 밀가루를 만지는 것 같다.

   아들 집에 도착한 날이 첫째 녀석의 생일이다. 며느리는 남편 생일상을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한 듯 다섯 명이 앉은 상 위에 빈자리가 없을 만큼 음식 준비를 하였다. 아내가 챙겨 간 수육과 김치가 더해져 먹을 것이 푸짐해졌다. 저녁 상을 물리고 생일 케이크를 올린다. 아들은 머리에 고깔을 쓰고 생일 노래를 함께 부른다. 이성을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둔 지금, 아들이 십 년 만에 부모와 동생까지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생일 축하를 받는다. 자식 부부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한다.

    아내와 딸의 손을 잡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 마련된 손님맞이 방으로 향한다. 아들이 이사를 앞두고 집이 어수선하여 따로 준비해 준 숙소다. 단지 내 숲 길을 한 바퀴 돌면서 하루를 마감하였다. 낯선 곳에서 지내는 하룻밤이지만 밀려오는 피곤함에 어느새 잠이 몰려와 눈을 감게 만들었다.

   밤새 내린 비는 이른 아침 눈을 뜨게 한다. 아내와 딸은 깊은 잠에 빠졌다.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겨 현관을 나서 아파트 단지를 걷는다. 몇 차례 온 곳이지만 처음으로 1동부터 9동까지 거치면서 단지 전체를 둘러본다. 여러 가지 입주민 편의 시설과 조경수가 눈에 들어온다. 따로 운동 시설이나 산책 길을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갖추어져 있다. 안개비가 아침 산책을 방해한다. 단지 한쪽에는 주말을 맞아 주민과 함께하는 가을맞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천막이 세워지고 음식 판매대가 펼쳐져 있다. 두 바퀴 째인데 내리는 비를 피해 발걸음을 숙소로 되돌렸다.

   모녀는 침실을 벗어나 얼굴 단장을 하고 있다. 나는 딸에게 팔이 붙잡힌 채 안면에 화장품 두세 가지가 덮여줘 주름이 메워진다. 아들 가족과 함께 오늘의 주인공을 태우고 행사장으로 향한다. 아기 엄마는 우리보다 먼저 출발을 한 모양이다. 손주의 첫 돌이다. 건물 입구에는 환영의 문구가 일행을 맞이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 직원이 안내해 주는 홀로 들어간다. 직원들과 진행자의 준비가 한창이다. 스크린에는 영상이 뒤바뀌며 시연이 이어진다. 아내와 딸을 데리고 근처 카페에 들러 차 한 잔씩을 시켜 행사 시작을 기다린다.

   정오가 가까워졌다. 돌잔치 행사장을 들어서는데 먼저 자리한 사돈 가족과 인사를 나눈다. 앞자리에 앉도록 자리를 권하자 돌잔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안내가 나온다. 곧이어 손주가 태어난 뒤부터 돌이 된 오늘까지 일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장면 장면이 지날 때마다 코끝이 찡하다. 엄마, 아빠를 부르는 단어가 귀에 닿을 즈음에는 급기야 눈물이 맺힌다. 예정일보다 몇 주 먼저 우리 모두에게 안긴 날, 수술실 앞 복도를 오가면서 벽에 걸린 시계 초침만 바라보고 기다렸다. 걱정과 달리 우렁찬 울음으로 우리 곁으로 왔다. 작은 몸짓을 어떻게 안아야 할지 두 손을 펼쳐 안는 게 망설여지기까지 했다. 백일이 지나 돌을 앞두고 또래 중 상위에 들어가는 키와 몸무게로 건강미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리저리 거실을 기어 다니는 활동력을 보여준다.

   돌잔치에서는 돌잡이로 어떤 물건을 잡는지 관심이 집중된다. 손주는 낮잠이 부족했는지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잔치 진행이 늦어진다. 평상시 좋아하는 인형과 간식이 주어지지만 반응은 금세 시들해진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돌잡이를 시도하는데 아기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쟁반에 놓인 물건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시간을 끌더니 청진기를 손에 든다. 자리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사진을 담고 가족들까지 동참한다.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어지고 팔에는 팔찌를 채운다. 아이는 평상시 하는 습관으로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간다. 공식 행사는 마무리된다. 행사 복을 벗기고 평소 입던 옷으로 갈아입혔더니 웃는 모습으로 돌아온다. 드레스가 여기저기 불편함을 준 모양이다.

   준비된 음식을 가져와 먹으면서 손주의 돌잔치가 마무리된다. 자주 만나는 또래 아가들의 가족도 함께 하였다. 축하 인사와 선물이 오가면서 자리를 정리한다. 잠이 부족한 손주를 안고 꽃바구니와 케이크를 챙겨 집으로 향한다. 아내는 거실에서 기저귀를 확인한다. 우유병에 물을 맞추고 손주를 작은 방에 눕힌다. 방문을 닫고 거실로 향하는데 옹아리가 연속이다. 아들 내외의 육아 방식에 맞춘다. 어른과 수면 분리를 해 온 터라 혼자 먹고 혼자 잠을 재운다. 우리의 정서와는 다르지만 도리가 없다. 계속해서 돌봐 줄 것도 아니고 하루 이틀 보고 가는 일이다. 하루 해가 서쪽으로 기운다. 강보에 싸여 지내던 손주가 물건을 붙잡고 게걸음을 시작한 게 신기하다. 아이의 울음으로 시작된 하루가 어른의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다.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할아버지는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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