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약해진다. 아이들의 성장을 통해 부부가 나이 들었음을 확인한다. 이제 같이 늙어 간다는 말이 실감된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삶의 형태는 다르기에 각자의 인생에서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기고 최우선으로 하는 가는 환경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듯싶다.
현실은 최고가 되어야 하고 뭔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크다. 주변을 살피지 못한 채 마냥 달려가는 이들을 자주 보아 왔다. 상대를 배려하고 공감하는 행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 전반에 이런 느낌은 깃들여 있다.
입시제도나 채용과 승진은 경쟁 속에서 함께 발전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잘 되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경합에서 상대를 무너뜨리고 이겨야 한다. 그렇게 가고 있다. 공동체보다 개인이 우선하는 사회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몸과 마음이 그렇게 느끼게 만든다.
디지털시대, 스마트한 세상에 예전의 생각은 오래된 것, 작고 초라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때 컴맹이 조직사회의 적응에 문제를 가져왔다면, 지금은 다양한 SNS 소통수단에 놓여 있다. 다만 구사하는 대상은 극히 제한적이다. 신세대와의 소통에 있어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상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전달한 내용을 보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시대다. 하나하나 직접 묻지 않아도 상대의 인지 상태를 알 수 있다.
이전의 방식이 좋고 옳다는 고집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습득은 어떻게 어떤 경로로 접하게 되었는가에 따라 다르다. 관계 속에서 강제적으로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경우는 습득이 빠르게 될 것이고,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면 자연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현실이 그렇다. 인터넷이 도입되고 개인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열풍일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식구는 많은데 살림살이는 녹록지 않아 가을걷이 전까지 곡식을 빌려 끼니를 이어가기도 하였다. 여름이면 수확한 밀을 방앗간에서 가공하여 몇 상자의 국수와 밀가루를 마련해 놓고 점심, 저녁은 늘 국수나 수제비를 밥상에 올렸다. 가을걷이 후에는 이전에 빌린 곡식을 갚고 나면 또 식량이 부족하다. 틈을 메우는 것이 고구마였다. 고구마가 점심이었고 저녁에는 양을 늘리기 위해 많은 가정에서 죽을 끓여 먹는데 큼직큼직하게 고구마를 잘라 넣었다. 고구마와 밀가루 가공 음식은 한 끼 건너 오르내린 주식이다. 요즘은 밀가루로 만든 것이 대세이고 고구마는 건강식품으로 찾거나 간식으로 준비한다. 그전과는 다른 식생활이다.
어릴 때 내 집처럼 다닌 마을 뒷산은 숲이 우거져 길의 흔적을 찾지 못할 정도다. 정겹고 포근함을 주던 산골짜기, 언제 들어도 정감이 가는 곳, 평온함의 대명사 고향도 추억만 덩그러니 남았다. 함께 걷고 뒹굴고 다툼을 벌이던 동무는 뿔뿔이 흩어져 소식이 드물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안타까움이 크다. 살아온 지난날과 살아갈 앞날을 어떻게 평가를 하겠는가? 인생이 어느 한 가지만으로 행복과 불행을 나눌 수 있을까.
삶의 여유를 가지게 되는 시간, 공감하고 소통하는 힘이 뒤떨어졌음을 반성한다. 젊음은 무한한 도전으로 매진하고 장년은 실천이 필요하고, 노년은 내려놓는 정리가 필요하다.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시절보다 늘어난 평균 수명, 예전보다 긴 우리 인생을 보면서 뒤돌아볼 겨를과 챙겨야 할 주변이 많아졌다. 이제는 가족을 시작으로 주변과 함께 안정감 있게 인생을 같이 이야기할 사람들과 삶을 아름답게 펼치는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