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년을 기다렸다. 금년에는 만나게 될까? 혹여 이제나 저제나 한 일이 또 이렇게 시간이 지나간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보고 싶은 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겠는가? 일찍이 이토록 기다리고 간절히 염원하는 때가 있었는가 싶다.
살면서 누군가를 기댈 수 있는 넉넉한 마음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대상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한 가지를 채워 주는가 싶으면 다른 한 부분은 부족한 것, 어쩌면 세상의 이치가 이렇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길지 않은 인생에서 서로 찾아가는 미로처럼 삶의 행로에 지름길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추구하고 최상으로 여기는 바가 다르기에 더더욱 여러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자라온 환경부터 접한 문화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일에 스며들고 동화되기란 어렵다. 작은 것에서 큰 의사 결정까지 갈등을 드러내는 요소는 자주 있다. 삶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일상이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되고 거기서 관련된 다툼은 곳곳에서 엿 보인다.
인생 전반을 성장기와 안정기, 쇠퇴기로 나뉘어 볼 때 안정기는 곧 쇠퇴기와 연결되어 있다. 학창 시절에 이어 직장 생활이라는 성장기를 통해 안정적인 자리를 잡아갈 무렵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절정기를 지나 은퇴라는 기로에 선다.
아이들의 성장은 기쁨과 고통,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우리가 자라던 시기와 지금은 여러 곳에서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잠깐 나누는 대화에서 느끼는 생각의 차이부터 최우선으로 여기는 삶의 방향까지 틈을 실감한다. 접한 경험과 가치관이 합쳐져 우리 사회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어느 한 부분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너 나 할 것 없이 닮아가고 문화로 굳어진다. 사랑을 말하면서 현실은 이해타산을 고려한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게 당연한 일이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신세대의 일면이다. 아니 현실 세대다. 잘잘못을 떠나 어느 때부터 일상으로 받아들이게끔 만든다. 한편으로 합리적인 경우도 있다. 어느 누구의 부담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공동의 책임이다. 서로 나누는 모습은 공감이 가고 공평하기도 하다.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 누렸던 전통적인 정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가족의 일원으로 새 식구를 맞이하는 일은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신세대 식구를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화되도록 하는 일이 과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표현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낯선 이를 잘 맞이할 수 있을까? 낯설지 않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마주할 때 다가올 어색함을 줄이자. 상대에 대한 배려다. 작은 부분부터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 의견 교환을 통해 상대 말에 귀 기울이고 수용하는 태도는 서로에게 믿음을 준다.
그동안 기다려 왔다. 조급함을 떨치자. 딸의 짝, 새 식구가 거리감 없이 구성원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켜보자. 새로운 가족문화에 적응할 수 있게, 웬만하면 상대의 요청이 있을 때 안내와 조언을 해 주자.
먼저 나서는 것보다는 새롭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편하게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도리어 부담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성급함보다는 느긋한 기다림 속에 머지않아 서로가 하나 되어 가는 모습이 곧 와닿게 될 것이다. 여유가 필요하다. 나 아닌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