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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와 구들장]

by 우영이

한옥의 겨울 채비는 난방용 재료 준비가 우선이다. 7~80년대 밥 짓기와 난방에 필수적인 것은 바로 땔감이었다. 지금이야 아무리 첩첩 산골이라도 밥은 전기나 가스가 쓰이고, 방 데우기는 화석 연료가 대신한다. 가을이 짙어가면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지게를 지고 동네 아이들과 무리 지어 다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 근처 산은 더 이상 마련할 나무가 없어 먼 산으로 자리를 옮긴다.


겨울 방학이면 아침을 먹고 오전에 한 짐,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또 한 짐, 이렇게 두 번의 땔감 하기가 이루어져야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어느 집 땔감 낟가리가 높이 쌓였는가에 부지런함 여부가 가려졌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마냥 좋았던 시기에 마음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산으로 땔감을 구하려 가는 현실이 못마땅했다. 겨울 채비는 따뜻한 생활과 취사용 나무 준비가 당시의 자연스러운 겨우살이 모습이었고 친구들과 몰려 가는 산은 놀이 겸 철이 든 어른 흉내를 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퇴직을 하고 전원생활을 꿈꾸며 시골집을 마련하였다. 첫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안채 난방은 기름보일러가 해 준다. 별채는 구들장이 놓인 온돌이라 땔감으로 아랫목부터 데운다. 이전 집주인이 창고에 나무를 남겨두어 지금까지는 잘 이용하고 있다. 사전 준비 차원에 난방용 장작을 구입하려고 검색을 하는데 한 트럭 당 만만찮은 비용이 든다. 지금까지는 안 마당과 텃밭의 유실수 가지치기로 얻은 나무가 난방을 충당해 준다.


토요일 한가한 오후에 인근 산으로 산책을 갔다. 산책로 인근에는 간벌한 나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옳다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다음날 아침 산책 겸 간단한 채비로 참나무를 집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특별한 도구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노끈과 보자기가 전부다. 노끈으로 장작 대여섯 개를 묶고 지게를 대신할 보자기를 어깨너비로 나무 전체를 에워싸 멜빵을 만들어 몇 백 미터를 지고 내려와 자동차에 싣고 오는 과정을 되풀이하였다. 전용 도구가 아니기에 어깨는 아려오고 힘에 부치었다.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난방용 땔감을 마련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걸 새삼 느낀다.


참나무 토막을 차에 싣고 있을 때 산행 온 사람이 무엇인지 묻는데 괜히 잘못을 탓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다른 이는 장작 더미를 보고 ‘칡’이냐고 물어 황당함까지 밀려왔다. 지금은 어디로 가든 땔감이 쓰이는 곳은 드물다. 오히려 황토 방이나 찜질방 등의 목적으로 땔나무가 필요할 정도다.


세월의 무게에 밀려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우리 주변의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난방이나 취사의 연료 또한 예외가 아니다.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그 부작용도 만만찮다. 옛 추억과 어린 시절의 풋풋함은 낭만에 떠밀려 편리함만 쫓고 있다. 오래전 지게라는 도구 하나로 농촌 생활의 대부분을 담당한 시절이 아득하다.


아궁이 속 불타오르는 참나무 장작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아궁이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만큼이나 지금의 오랜 정신을 이어 주는 가치가 새록새록 돋아 우리의 앞날도 함께 생각하는 하루가 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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