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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by 우영이

예나 지금이나 명절은 떨어져 지내던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다. 먼 거리를 가다 멈추기가 반복되는 도로에서 오로지 한마음으로 참고 견디며 몇 시간 걸려 보고 싶은 이들의 품에 안긴다.
자식이 살림을 나가 아이가 태어났다. 갓난아기가 먼 곳까지 이동이 번거로울 것 같아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며 셋이 시간을 보내도록 하였다. 이번에는 돌이 지났기에 아들 부부의 판단에 맡겼다. 난생처음 손주가 할아버지 집으로 방문을 한다. 온다는 연락을 받고 지금은 어디를 지나고 있을까. 이동 앱을 연결시킨다. 아내는 급한 마음에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는데 한 시간이면 집에 도착한다는 소식이다.
거실 창문 너머 주차장을 내려다본다. 자정이 지나 연락이 왔다. 입고 있던 바지에 외투 하나 걸치고 내려가는데 잠에서 깬 손주가 우리 부부를 보더니 쌩긋 웃으며 손을 좌우로 흔든다. 밤늦게 기다린 피곤함이 봄 눈 녹듯 사라진다. 커다란 짐 꾸러미들을 옮겨 자식 식구와 집으로 들어섰다. 돌 지난 꼬마의 잠투정이 시작된다. 칭얼거리며 옹알이도 아닌 것이 외계어 마냥 알아들을 수 없는 표현으로 첫 방문의 기억을 남긴다.
새벽녘 잠을 자고 있을 시각인데 현관 입구 쪽 방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이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집 전체로 퍼진다. 해가 뜨려면 세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다.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였는지 참새처럼 작은 입에 금세 우유병이 물리고 울음은 사라졌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한 청각 덕분에 가족들이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이동한다. 화장실 물 내리는 것조차 미룬다. 몇 시간 만에 행동이 위축된다.
해가 뜰 무렵 방에서 나온 손주는 거실 소파에 상체를 기울여 몸을 밀어 올린다. 이내 거실 바닥을 네 곳을 밀착시켜 기어 다닌다. 허리에 양손을 바쳐 걸음마를 시키는데 이내 궁둥이가 내려앉는다. 혼자 서고 걷기에 시일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과일 모형 장난감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그림책을 집더니 손을 들어 도움을 요청한다. 아들 녀석이 읽어 주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엄마에게 책이 넘겨진다. 익숙한 목소리가 편안함을 주는 게 당연하다.
손주의 손동작과 몸놀림에 웃음이 가득하다. 이유식 먹이는 동안은 할아비가 숟가락을 넘겨받아 호흡을 맞춘다. 아기 손으로 잡도록 숟가락을 주면 작은 입을 크게 벌려 덥석 삼킨다. 같이 머물러 있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이틀이 지났다. 내일이면 우리들 곁을 떠나 집으로 돌아간다. 사흘간 육아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들과 며느리의 노고를 새삼 느낀다.
내 자식이 성장할 때는 옆에서 별생각 없이 아내에게 맡기다시피 한 지난날이 갑자기 돌아보게 된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정성과 사랑만큼은 차이가 있을까. 기저귀와 이유식까지 모든 것을 손수 만들었던 지난날과 달리 지금은 여러 가지가 잘 갖추어져 있다.
자식의 육아 방식을 접하면서 삼십 년 전 무심하게 팽개친 아이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 세대의 공통점인가. 그것이 아니면 몇몇의 행태인가. 나이 든 어른들이 손주가 애틋하게 보이고 자식 키울 때의 소홀함을 만회하려고 정을 쏟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배를 바닥에 붙이고 두 손을 번갈아 내딛는 모습을 떨쳐 어느 순간 아장아장 걷는 손주를 떠올린다. 건강하게 나래를 활짝 펴는 내일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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