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음식은 조촐해졌다. 모인 식구들이 며칠 동안 먹을 생선과 고기나 과일이 전부다. 여태 지내왔던 명절 제사를 더 이상 모시지 않기로 했다. 어머님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는 행하기로 마음먹었건만 결국 형제들의 의견에 동참하여 약삭빠른 짓을 저질렀다.
손주가 집에서 으뜸이다. 생체 리듬이 덜 성숙한 아가가 순서를 바꾼다. 어른들의 밥 먹을 시간이 되어도 아이가 잠자는 것이 방해받지 않도록 기다려 준다. 작은 대화에도 예민하게 잠에서 깨는 일이 생겨 칭얼거리는 모습에 부담이 된다. 이유식 먹이는 때면 유아용 자른 김이 동난다. 맨 김이 간식처럼 작은 손으로 조각을 내어 입 속으로 밀어 넣는다. 침이 묻어 손가락에 붙은 김 조각을 떼어내려 무던히 씨름하는 표정조차 관심이다.
아기용 물과 우유가 팩으로 담겨 준비되었다. 도라지 배즙은 손주의 최애 물품이다. 이유식을 먹이는데 입 벌리는 것에 손사래를 치면 며느리는 즙과 김 조각으로 유인한다. 숟가락에 올려진 김이 밥그릇을 말끔하게 비우게 만든다. 오물오물 앞니로 조각을 내다 씹는 듯 삼키는 자태가 옆에서 지켜보는 식구들에게 웃음과 박수를 부추긴다.
눈 폭탄의 바람이 기류를 탄 듯 나뭇가지를 뒤흔든다. 손주가 멜빵을 가져오고 신발이 손에 들려있다. 집안에만 있기에 답답한 모양이다. 해수욕장으로 차를 모는데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아이를 밖에 내놓지 못할 정도다. 공원 언저리 소나무 가지가 바람 부는 방향 따라 물결처럼 일렁이며 큰 소리로 울어댄다. 동편에 새로이 조성된 백사장으로 다가서는데 눈이 부셨는지 아기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흰 갈매기 떼가 오후 한가로이 먹이를 찾는듯하지만 더 이상 머물러 있는 것은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다.
키즈 카페로 이동하여 새로운 놀이 도구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공동 놀이터가 여기에 있다. 집으로 돌아와 식탁을 둘러보며 아들에게 며느리가 건네는 말 ‘우유 어디 뒀어요’ 하는데 잠시 멈칫하다가 바깥에 오래 나와 있어 내가 정리했다고 이야기한다. 하루 동안 아이 먹이려고 둔 것이란다. 어쩌나 묻지도 않고 처리한 자신이 괜히 겸연쩍다. 사과와 바나나며 딸기 등 먹다 남긴 것들이 군데군데 펼쳐져 있어 정리하다가 팩에 든 우유는 직접 마셨는데 이렇게 찾아질지 몰랐다.
할아버지가 손주 우유를 빼앗아 먹었다는 말이 소문나게 생겼다.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던 물건 정리한 것이 탈이다. 이제부터는 작은 일도 확인하고 처리할게. 며늘아, 아가야! 할아비가 우유랑 간식 아주 많이 사줄게. 다음번 만날 때는 둘이 손잡고 맛난 것 같이 고르러 가자.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려무나. 함께 걷고 뛰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