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찾아왔다. 얼마 전 상담실 주관으로 각 학급에서 '마음 약국'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학생 스스로 '마음 처방전'을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음 처방전에는 1. 걱정이 없다. 2. 요즘 친구관계가 어렵다. 3. 자주 화가 나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 등 자신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있으면 체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마지막 칸, '상담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싶으면 옆 칸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 주세요'에 동그라미를 표시한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자주 화가 나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에 표시한 학생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상담실에 왔을까? 학생에게 '자기 소개하기' 설문지를 건네주었다. 학생은 학년과 반, 이름을 썼다. 담임선생님 이름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나머지 내용들은 내가 학생에게 질문을 하고 학생이 답한 내용을 기록했다.
"자, 아래 칸에 있는 어떤 것 때문에 마음이 힘든지 얘기해 줄래?", "친구관계? 가족?...." 다 아니란다.
"그럼? " 내 질문에 학생은 "상담실에 와보고 싶어서요."라고 답했다. "그렇구나. 그럼 우리 '감정 온도계'에 색칠해볼까?" 학생은 "네!" 하고 답했다. 가림막과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학생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감정 온도계는 '행복, '걱정', '분노', '웃음'을 표시할 수 있다. 감정온도계를 칠하면서 학생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상담 선생님과 얘기하고 싶어 상담실로 찾아온 친구는 행복온도계에는 ' 난 나의 삶에 만족해요' , 걱정 온도계에는 '나는 늘 평온해요'에 빨간색 색연필로 색칠했다.
"오늘 상담실에 와서 기분이 어땠어?",
"재밌었어요"
"선생님도 재밌었어. 언제든 상담실에 오고 싶을 때 다시 만나자~"
친구는 배꼽 인사를 하고 상담실 문을 나섰다.
언젠가, 아들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그렇구나"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러자 아들이, "아빠, 상담교사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의 대답에 영혼이 없음을 들켜버렸다. "아빠가 손 씻고 와서 답해줘도 될까?" 말하고, 내 감정을 정리한 후에 다시 아들과 대화를 했다면 어땠을까? 아들이 내게 말을 걸었던 그때, 나의 행복 온도계 온도는 '그저 그래요', 걱정 온도계 온도는 '나는 걱정을 많이 해요'를 가리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내 감정의 온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관성으로 답했다.
최성애, 조벽 교수의 '청소년 감정코칭'이란 책에서 '아이의 마음을 보기 전에 나의 마음부터 살펴라'라고 했다. 나의 감정 온도계가 몇 도를 가리키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아들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나는 상담교사지만 사춘기 아들에게 감정코칭형 아빠가 아니었다. 아이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모르게 한 '축소 전환형 양육자'였고,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억압형 양육자'였다. 이론은 알고 있으나 가족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아빠였다.
아들이 중2가 되던 4년 전, 나는 내가 좋은 아빠인 줄 알고 있었다. 땡 하면 퇴근하는 가장이었고, 영성과 인성, 지성을 갖춘 아이들로 양육하려고 대안학교에 많은 학비를 부담하면서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 아들은 나를 보면 불편해했고, 긴장했다. 나는 아들을 향한 내 감정의 온도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들이 중2가 되던 해에 나는 직장을 다니며 상담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퇴근 후에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곧장 도서관에 가서 자정이 다 되어 집에 왔다. 아들과 어쩌다 나누는 이야기는 성적에 국한되어 있었다. 아들이 내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것을 나는 사춘기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중 3이 되던 해에 전문상담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나와 아들의 마음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고 1이 된 아들이 학교에서 단기선교를 다녀온 다음 날, 나는 아들의 속마음과 직면하게 되었다.
"단기 선교를 다녀와서 무엇을 느꼈는지 말해주겠니?"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아들이 울먹이며 내게 말했다. "아빠가 불편해요. 아빠를 사랑하고 싶은데 안돼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 상담 선생님과 담임선생님께 아들과 나의 상황을 전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상담 선생님이 카운슬러를 추천해 주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으며 내 유년시절을 떠올렸다.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암 투병을 하던 엄마가 돌아가셨다. 어렸던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거실에 걸린 엄마의 영정사진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카운슬러에게 그 장면을 얘기하면서 한참을 울었다. 카운슬러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혼자 절하던 어린 나에게 어른이 된 내가 찾아가 "괜찮아. 많이 힘들었지?" 말하며 안아주었다. 상담이 이어지면서 아버지의 재혼 후 내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들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지내왔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아들에게 사과를 했다. 아들을 향한 잔소리가 나오려고 하면 내 감정의 온도를 체크했다. 분노 온도계가 올라가는구나 싶으면, "여보, 산책갔다 올게", "아들, 아빠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 올게"라고 말하고 집을 나선다. 분노의 온도가 낮아지니 잔소리가 줄었다. 조금씩 아들과 나의 관계는 나아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성장형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지인으로부터 자녀와의 갈등으로 인해 도움을 요청받을 때가 있다. 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보면, 지인의 감정의 온도계가 처음보다 낮아지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타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감정의 온도를 알아차리기 때문인 것 같다. 감정의 온도가 낮아졌을 때 비로소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의 감정 온도계는 몇 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