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아, 아이스크림 뭐 먹고 싶어?"
점심을 먹고 쉬고 있는 큰 아들에게 물었다.
"부라보콘"
"초코?"
"아니요. 퓨어한 거요."
아파트를 나와 몇 달 전에 새로 생긴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들렸다. 아들이 말한 부라보콘을 제일 먼저 골랐다. "강민아. 수능 100일 남았네. 축하해" 집에 돌아와 부라보콘을 건네며 말했다. 이제 100일이 지나면 아들은 친구들과 고기뷔페에 가서 주인아저씨가 눈치 주기 전까지 배불리 고기를 먹을 것이고, 재활용 버리는 날에는 아파트 단지를 돌며 고쳐서 사용할 만한 재활용품을 주워 올 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못 본 유튜브 영상들도 마음껏 보겠지. 수능을 마치고 홀가분해할 강민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이제 100일 남았다. 파이팅!!!
그제는 온 가족이 안방 침대에 누워 수다를 떨었다. 내 옆에 누운 강민이가 배를 눌러주면 안정감이 느껴진다며 내 다리를 들어 자기 배 위로 올렸다. 온 가족이 속옷만 입은 채로 누워 얘기하다 웃고, 웃다가 물 마시고, 시간이 금세 새벽 1시가 다 되어갔다. "아빠, 고 3 중에 내가 제일 편한 것 같아요. 애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뭐가 힘든지 모르겠어. 아빠, 이중섭 작가의 그림이 생각나지 않아요?" 강민이는 그날 행복했던 것 같다.
강민아!
아빠가 고 3 때는 대입시험 100일을 앞두고 '百日酒'라고 하면서 끼리끼리 술 먹는 친구들이 있었단다.
인기 많았던 친구가 같은 독서실에 다니는 여학생들에게 초콜릿 선물을 받은 걸 부러워했던 기억이 나네. 강민이는 아빠 나이가 되면 수능 100일 전을 어떻게 기억할까?
얼마 전 한 강의에서 '행복은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기억의 소산물이다'라고 하더라. 강의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어. 한 친구가 이탈리아를 여행했는데 일주일 내내 즐거웠대. 그런데 여행 마지막 날 소매치기를 당했대. 이후 친구는 이탈리아 얘기만 나오면 소매치기당한 그날의 고생이 떠올라 치를 떤다고 하더라. 소매치기를 당하기 전까지는 이탈리아에서의 여행이 너무나 행복했는데 말이야.
강민이가 수능을 보기까지 100일 동안의 시간들이 즐거운 경험만으로 축적될 수는 없겠지만, 행복한 기억 한 가지가 100일 동안의 시간을 대표하는 썸네일이 되면 좋겠다.^^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 이런 얘기했잖아. 입추는 8월 7일이고, 말복은 오늘, 8월 10일이고. 순서가 왜 그런지 궁금해했지. 입추는 곧 가을이 올 거라는 의미로 Autumn is coming. 가까운 미래를 나타내고, 말복은 여름이 가버렸다는 의미로 Summer has gone. 현재 완료 시제의 경험적 용법으로 쓰인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여름과 가을이 겹치는 이쯤에서 잠시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면 좋겠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 여름밤의 꿈'이 생각나는 이 밤에 말이야.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면 어떨까?
앞서 얘기한 강연에서는 강연자가 인사고과를 앞둔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고 하더라. 자신도 인사고과를 받아야 하는데 말이야. 'Are you happy living as yourself?', 번역하면 이렇게 되겠지? '당신은 당신의 존재 자체로 행복한가요?'
아빠는 강민이가 100일 후의 대학입시 결과에 상관없이 강민이 존재 자체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빠에게 강민이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이란다.
아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