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사진과 수능

사고 중지 기법

by gentle rain

지난 주말, 큰 아들이 이발을 했다. 이발을 한지 한 달이 안되었는데 평소 가던 미장원이 아니라 5,000원 비싼 미장원에 다녀왔다. 전과는 다른 스타일이었다. 기분 전환을 하려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다음 주에 졸업 사진을 찍기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한 반이 함께 찍지는 못하고 4명씩 조를 이루어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어제와 그제는 어떤 콘셉트로 사진을 찍을지 조원들과 화상회의를 했다. 이번 주말에는 의류회사 CEO인 친구 어머니의 찬스를 사용하기로 했단다. 회사 쇼룸에 모여 콘셉트에 맞는 소품을 고른다고 한다.

두 달 후면 수능인데...


'고 3은 수험생이다 -> 수험생은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졸업사진을 잘 찍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대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그러므로 졸업사진보다 수능시험 준비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자동적 사고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돌아갔다.


"멈춰" 내 안의 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생각을 멈추고, 방향을 돌렸다.

'졸업사진을 잘 찍고 싶은가 보다. 이왕이면 멋지게 사진이 나오면 좋지. 한 번 밖에 없는 고등학교 졸업사진이잖아. ' 영국 신사 분위기가 나는 옷을 준비해서 모이기로 했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안방 옷장 문을 열었다. 나보다 15kg 더 나가는 아들에게 맞을만한 재킷을 골라서 건네주었다. 지금과 달리 넉넉한 양복이 유행이었던 덕에 20년이 다 되어가는 내 결혼 예복 상의가 아들에게 맞았다. 금박 단추가 달린 블레이저도 아들이 입으니 괜찮아 보였다. 갈색톤의 헌팅캡도 건네주었다.

이번 주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한 아들에게 물을 많이 먹고, 식사량을 반으로 줄여보라고 했다. 공부 얘기는 하지 않으려 애쓰고 또 애썼다.


오늘 아침 등굣길에 핸드폰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 큰 아들이 내 핸드폰을 써도 되냐고 물었다. 오늘 새벽에 생중계된 아이폰 13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싶다고 했다. 핸드폰을 건네자 아들은 유튜브를 빠르게 스킵하면서 아이폰 13의 용량, 디자인, 가격 등을 이야기해주었다. 등굣길 차 안의 부자간의 어색함이 사라졌다.

아이폰.JPG 아이폰 13

큰 아들은 얼마 전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출시 프레젠테이션을 다운로드하여 여러 차례 들었다. 마치 명설교에 감동받은 얼굴로 그의 대사를 따라서 말했다. 거의 외운 것 같은 아들. 스티브 잡스는 기계치인 나와 기계공학과를 지망하는 큰 아들 사이의 등굣길 차 안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서로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자동적 사고를 멈추는 것은 쉽지 않다. 무던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이러한 부정적인 사고를 멈추는 기법을 '사고 중지 기법'(thought stopping)이라고 한다. 부정적이고 자기 패배적으로 흘러가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자신에게 큰 소리로, 혹은 마음속으로 큰 소리로 '멈춰(stop)'라고 외쳐 그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며칠, 아들과의 관계에서 유용했던 기법이다.


스스로를 행복한 고 3이라고 말하는 아들이 원하는 기계공학과에 진학하면 좋겠다. 또한 아들과 좀 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 졸업사진도 행복하게 찍었으면 좋겠다.

"아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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