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아빠 통장에 잔고가 없단다"

50대 아빠의 불안

by gentle rain

"아빠는 대학 첫 등록금을 대줄 거고, 나머지 학비는 네가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고, 국가장학금을 대출받아 취업한 후 갚아 나가는 방법도 있어..."


과탐과 사탐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을 말하는 막내에게 이과와 문과, 교과목의 특징을 설명한 후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다. 그 자리에 있던 아내가 며칠 후 산책을 하면서 막내에게 그런 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안학교에 두 아들을 보내면서 학교에 만족하고, 감사한 반면, 늘 학비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그 부담감에 눌렸던 마음이 아무 연계성 없이 말로 튀어나와 버렸다.


교칙에 따라 핸드폰이 없는 고 3인 큰 아들은 수능이 끝나면 바로 아이폰을 살 거라고 한다. 틈이 날 때마다 가성비 높고, 멋진 디자인의 노트북과 태블릿을 검색하며 무엇을 살지 행복한 고민을 한다. 그런데 나는 아들의 행복감과 대척되는 생각을 한다. '이 기기들을 사고, 대학 등록금까지 내려면 얼마가 있어야 할까?'


"아들아, 너 돈 있니?"

이렇게 물을 수는 없다. 수능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신이 원하는 기기들을 샀으면 좋겠다.

"아빠 통장에 잔고가 없단다. 아빠 정년이 이제 10년 남았어."

이렇게 말할 뻔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진지하게 아들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아들아, 아빠도 은퇴 후를 준비해야겠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집 한 채가 전재산인 우리 부부의 은퇴 후의 삶을 지금이라도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 불안의 원인이 단지 은퇴 후를 준비하지 않은 것에만 있을까?


심리학자인 카렌 호니는 '적대적인 세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증가하는 모든 측면에 파고드는 고독과 무력감'을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불안이라고 했다. 이 세계는 과연 그렇게 적대적일까? 퇴직금으로 수십억을 받았다는 어느 청년의 이야기, 치솟는 물가,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상황을 바라보면 정말 적대적인 세계 같다. 나도 모르게 고독과 불안감이 늘어가는 것 같다.



이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나를 보호하고 싶다. 카렌 호니는 기본적 불안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4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애정과 사랑 확보이다.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타인을 위협하여 애정을 제공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둘째, 복종이다. 타인에게 반감을 사는 행위를 피하기 위해 자신이 갖는 욕망이나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다.

셋째, 힘 성취이다. 성공을 통해 자신의 무력감을 보상하고 안전을 성취하는 것이다.

넷째, 철회이다.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타인들과 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이렇게 살면 더 불안할 것 같다. 나는 그냥 내식으로 불안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며 살고 싶다.


더 사랑하고,

더 웃고,

더 움직이고,

더 감사하고,

더 감탄하고...


덜 불평하고,

덜 부러워하고,

덜 가지고,

덜 생각하고...


50대 아빠의 불안은 당연한 거 아닐까? 피할 수 없는 거라면 불안이란 녀석을 쓰담쓰담해주고, 종종 불안해하는 나를 토닥토닥해주면 살면 되지 뭐.


"아들아, 아빠 정년이 10년은 남았고, 집도 있고, 건강하고, 괜찮아.

그런데 대학 가면 성적 장학금은 받았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아들!"


수능도 안 본 아들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본다.

이렇게 적어보니 불안이 가슴에서 배꼽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