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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n Aug 02. 2020

변한 것은 우리의 욕심뿐이었다

#43

항상 공짜로 머물 수 있는 장소들만 찾아다녔기에 우린 별의별 정박지들을 다 가보았다. 숲 속이나 강가는 기본이고 마트 주차장이나 공원 주차장뿐만 아니라 심지어 남의 집 앞마당에서도 정박을 하고 태연하게 잠을 잤다. 사랑이가 없을 때에는 호텔 앞 길가 주차장에서 공짜 와이파이를 쓰며 쥐 죽은 듯이 하루 종일 지냈었고 밤이 늦어 더 이상 이동하기 힘들 때에는 가던 길 한켠에 그대로 차를 세우고 밤을 보냈다.

작은 해변가에서 이주일 가까이를 지낸 뒤 물이 다 떨어진 우리는 혜아의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올라가는 김에 물도 채울 겸 며칠 일찍 출발했는데, 우리가 지냈던 해변가와 바르셀로나 사이에 와인을 생산하는 작은 공장에서 무료로 정박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곳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사랑이를 입양한 뒤로는 정박지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태어난 지 일 년도 안된 사랑이는 여전히 배변훈련이 완벽히 되어 있지 않았고 대형견을 키워본 적이 없었던 우리도 사랑이의 신호를 잘 읽지 못했다. 그래서 1시간이 멀다 하고 툭하면 소변이 마려운 것일까 대변이 마려운 것일까 걱정하며 산책을 데리고 나갔기 때문에 도심 속이나 주차장처럼 사람들이 많거나 캠핑이 금지되어 있는 곳은 무조건 피해야만 했다.

스페인은 굳이 그런 걱정을 하지도 않아도 될 만큼 숲과 바다로 둘러싸인 정박지가 많았다. 하지만 캠핑카에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설비가 매우 부족했기에 밴라이프가 쉽지 않았는데 작은 와인 공장의 정박지는 와인 밭이 펼쳐진 들판 위에 있었으며 물을 받고 버릴 수도 있는 시설이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그동안 스페인에서 보기 드문 정박지였던 것이다. 게다가 무료 와인 시음회도 한다고 하니 호기심까지 더해져서 바르셀로나에 가기 전 꼭 머물고 싶었다.


그동안 밴라이프를 하면서 우린 레저생활이나 취미생활 또는 여행지 체험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밴라이프는 그저 생존을 위한 평범한 일상이었고 살아내고 살아가느라 바쁜 우리에게 레저나 취미 생활은 사치였다. 게다가 좁아터진 차에 그러한 생활들을 위한 도구나 장비를 넣을 공간이 없었고 여행지 체험을 즐길 만큼 경제사정도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나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라는 거짓말로 넘어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겨울의 알프스를 넘으며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는 난 스키장들을 애써 못 본 척 넘어갔고 아름다운 예술품들이 넘쳐나는 루브르 박물관도 인터넷으로 보는 게 훨씬 더 잘 보인다며 쿨한 척 들어가지 않았다. 혜아도 마트에서 파는 케잌이 더 맛있다며 화려한 빵과 초콜렛이 넘쳐나는 프랑스의 베이커리들을 그냥 지나쳤다. 때문에 우린 이런 무료 체험이 있으면 눈에 불을 켜고 놓치지 않았다.



스페인의 어느 작은 와이너리 무료 시음회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외관일 거라고 상상했던 스페인의 작은 와이너리는 오히려 많이 평범했다. 불법 체류 노동자들이 안에서 싸구려 티셔츠를 접고 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낡은 시멘트 건물 주위로는 와인 밭보다 공사 중인 땅이 더 많았다. 캠핑카 정박지는 건물의 뒤편이었는데 이미 유럽 각지에서 온 크고 작은 캠핑카들로 주차장은 꽤나 붐볐다. 캠핑 앱에 나온 사진과 모습은 많이 달랐고 와이파이가 된다는 정보도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텅 빈 물탱크를 채울 수 있고 화장실도 비울 수 있으니 그동안 보아 온 스페인의 그 어느 정박지 보다 좋았다.

그날 저녁 그곳에 있던 몇 명의 캠퍼들과 함께 무료 와인 시음회에 참석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스페인, 아니 정확하게는 카탈루냐 직원이 두 시간에 걸쳐 신나게 자신들의 와인을 설명하며 끝도 없이 우리들의 잔을 채워주었고 영국, 네덜란드 그리고 독일에서 온 정박지 이웃(?)들은 꽤나 거나하게 마시고는 어김없이 와인들을 구입했다. 생각보다 저렴한 와인 가격을 보고 우리도 다음 날 바르셀로나에서 혜아의 지인들을 만나기로 했으니 같이 마실 생각으로 두 병을 집어 들었다. 사실 며칠 전 프랑스 니스에서 스냅사진 촬영 예약이 들어온 덕분에 약간은 허세를 부리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색다른 밤이 지나고 난 다음 날 여유롭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있는 우리 차 앞으로 옆집 아저씨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네덜란드 번호판을 단 차를 타고 온 아저씨는 카라반을 끌고 온 듯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카라반인지 그저 양철로 만든 바퀴 달린 창고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그 아저씨와 한참을 대화를 나누고 난 후에야 직접 만든 카라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철 프레임으로 뼈대를 만들고 나무로 틀을 짜서 그 위에 알루미늄 판을 덮어서 만든 것 같았는데 아저씨가 직접 하나하나 만들었으며 지금도 여행을 다니면서 계속 만들고 있다고 했다.

굉장히 어설프고 허술해 보였다. 어떻게 저 안에서 살 수 있는지 궁금했다. 변변한 단열재도 붙여놓지 않은 상태여서 너무 추울 것 같았다. 게다가 아저씨는 혼자가 아니었다. 카라반 안에서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나이가 지긋한 모습을 한 아저씨의 여자 친구가 인사를 건냈는데 그녀의 몸이 좋지 않아 자신들이 살던 도시를 떠나 여행을 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차의 뒷좌석에 사람이 절대 탈 수 없을 만큼 온갖 집안 살림과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걸 보니 이런 삶을 산지 꽤나 오래돼 보였다.

혜아 지인들과의 불타는 밤

하지만 아저씨는 매우 행복해 보였다. 아줌마와 따뜻한 한겨울 스페인의 와인농장에서 모닝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행복한 것 같았다. 양철판을 이어 붙여 만든 카라반이지만 곧 있으면 가스도 연결할 수 있게 개조가 되어 난방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저씨는 백발의 어린아이 같았다. 카라반은 한없이 허술해 보였고 쓰레기처럼 보이는 가재도구가 잔뜩 쌓여 있는 차는 그들이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지만 아저씨와 아줌마는 내 눈에 행복해 보였다. 

사실 이맘때 즈음 우리는 갈등을 하고 있었다. 얼른 크로아티아로 가서 민박집을 열어 돈을 벌며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밴라이프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밴라이프가 고달프고 서러웠지만 그만두고 싶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집에서 살고 싶은 복잡한 갈등이었다. 돈이 없어도 행복했지만 돈이 있으면 훨씬 더 행복할 거 같았고 좁아터진 밴은 아늑하고 포근했지만 방이 하나 더 있으면 더욱 아늑하고 포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허름한 양철 카라반을 끌고 온 아저씨를 보고 맨 처음 영국에서 어설프게 완성된 밴을 끌고 출발했던 때의 우리가 떠올랐다. 그때의 우리는 단 돈 10유로만 있어도 행복했다. 닭 한 마리로 며칠을 우려먹어도 즐거웠고 맥주 한 캔에 즐거웠으며 바게뜨에 발라 먹을 버터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 우리 캠퍼밴이 든든했고 믿음직스러웠다. 어디든지 갈 수 있게 해 주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해주는 우리의 밴은 오히려 호화스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덧 우리는 욕심이 많아져 있었다. 200유로가 있어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불안했고 불만이었다. 옆에 세워져 있는 크고 비싼 캠핑카들을 부러워했다. 저 캠핑카를 타면 훨씬 여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 우리 밴이 좁고 초라하다고 불평을 했다. 그래서 밴라이프를 그만두고 더 큰돈을 벌기 위해 민박집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캠퍼밴이 작아진 것 같았고 통장은 더 비어버린 것 같았지만 아저씨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나니 변한 것은 캠퍼밴이나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우리의 욕심뿐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고민은 우리가 크로아티아에서 지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와이너리 정박지는 해가 잘 들어 좋았지만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걸 좀 많이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고 바르셀로나에 미리 가서 혜아의 지인들을 기다리면 좋을 거 같아서  서둘러 밴에 물을 버리고 채운 뒤 정박지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스페인을 떠났다. 곧 니스에서 신혼부부의 스냅 촬영이 예약되어 있었으며 민박집을 하기 전 혜아가 한국에 갔다 오기로 결정을 해서 촬영이 끝나고 바로 파리로 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꽃 축제가 열리는 니스에서 너무나 행복한 신혼부부의 스냅 촬영을 마치고 니스 도심 뒤편의 산꼭대기에서 잠을 잔 뒤 우리는 빠른 속도로 파리로 이동했다.

사실 우리는 니스에서 스냅 촬영을 해서는 안되었다. 쉥갠조약국가에서 머물 수 있는 90일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고 혜아를 파리 공항에 내려주고 크로아티아까지 기간 내에 가려면 바르셀로나에서 바로 파리로 가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 푼이 아쉬웠던 우리는 니스에서의 스냅 촬영을 강행했고 이 선택은 혜아가 한국으로 떠난 뒤 나에게 엄청난 고생과 스트레스로 돌아올 것이란 걸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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