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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Luna May 02. 2023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기차

 

 세비야에서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마지막 목적지인 라 가리가(La Garriga)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곳은 카탈루냐 광장 기차역에서 R3 Renfe를 타고 50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 스페인의 소도시였다. 세비야에서 바르셀로나까지는 부엘링 항공을 이용했는데 항공기 지연이나 수화물 분실로 악명 높은 저가 항공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다행히 내가 탄 비행기는 별 탈 없이 제시간에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고 카탈루냐 광장 기차역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며 이번에는 기차를 잘 타야 한다는 생각에만 전념했다. 스산한 카탈루냐 지하 기차역 플랫폼은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붐볐고, 나는 캐리어를 꼭 움켜쥔 채 R3 열차에 무사히 올랐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R3 열차인 것만 보고, 반가운 마음에 기차의 목적지도 확인하지 않고 탑승을 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라 가리가로 가는 방향이 아닌, 바르셀로나 산츠역으로 가는 기차를 탄 것 같았다. 당황한 나는 옆자리의 스페인 사람에게 한번 더 다급히 물었고, 그녀는 내가 기차를 잘못 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허둥지둥 산츠역에 내려 다시 반대 방향으로 가는 플랫폼을 찾아 헤매다 가까스로 라 가리가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스페인 열차 노선은 왜 그렇게 많고 복잡한지, 게다가 열차를 타는 플랫폼을 왜 열차 도착 직전이 되어야 전광판으로 알려주는지. 어찌나 신경을 썼던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어쨌든 나는 기차역에서 헤매느라 예정했던 숙소 체크인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숙소 사이트에서 이곳의 소개 글을 읽고 스페인에 가면 이 한적한 마을에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사장님은 딸과 함께 이곳에서 거주하며 민박을 하고 계셨는데 모녀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집의 방 한 칸을 손님에게 내어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대도시에서 벗어난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여유 있게 쉬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했던 시간들을 곧 보상받게 될 것임을 숙소 문 밖에서 숨을 고르고 서 있으면서 이미 느끼고 있었다.


 숙소의 문이 열리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주근깨가 귀여운, 자그마한 체구의 아름다운 한국 여인이 환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잘 찾아오셨네요.”

 그녀의 이름은 Min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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