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마을에 갈 생각은 없었다. 우연히 세비야 근교 도시 론다에 가는 길에 잠시 들르게 되었는데,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인정받았다고 하는 마을이었다.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고, 건물들은 대부분 흰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고지대에 있는 마을 앞쪽으로 넓은 호수가 펼쳐진 풍광이 비현실적으로 신비로웠다. 마을은 규모가 작았고, 이런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나 싶을 정도로 집도 상점도 별로 없었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 그곳에서 유일하게 영업을 하고 있는 카페에 갔다. 호텔도 같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로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니 단정하고 조용한 카페가 나타났다. 테이블도 의자도 멋을 부린 흔적이 없었고, 큰 창으로 산과 하늘이 고즈넉하게 보였다. 나는 그 시골스러운 카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커피 주문을 받는 분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분이었는데 아주 천천히 주문을 받고 천천히 커피를 내어주셨다. 그의 느긋한 동작과 표정을 보니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함께 갔던 일행은 아이스 라떼를 주문했고,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아이스 라떼는 따로 얼음이 담긴 컵을 주셨는데, 얼음은 커다란 한 덩어리로 잔에 꽉 찬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 투박함이 정겨웠다. 손잡이도 없는 유리잔에 담겨 나온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인스턴트커피와 원두커피 그 사이 어느 지점의 달짝지근한 맛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 황량한 마을에 일주일쯤 머물면 어떨까. 건너편 하얀 호텔에 방을 하나 얻어 매일 창밖을 바라보면 어떨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수를 바라보다가, 반대편 숲을 바라보다가 한나절을 보내면 어떨까. 관광객도 현지인도 보이지 않는 조용한 길을 걷다 이 카페에 와서 커피를 한잔 마시는 거지. 다시 호텔로 돌아가 책을 읽다 스르르 낮잠을 자기도 하는 거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마을에 문을 연 식당에 가서 해산물 타파스와 맥주를 한잔 주문해 봐야지. 그때쯤이면 노을이 질까.
언젠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아주 멀리 떠난 이들을 떠올려보게도 되겠지. 눈물이 날 것 같으면 맥주를 한 캔 사서 호텔로 돌아가야지. 아직 하지 못한, 이제 영원히 하지 못할, 마음에 남은 말들을 꺼내 적어 보기도 하는 거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