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의 메인 도로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세비야 미술관이 있었다. 1.5유로의 저렴한 입장료를 내고 미술관에 들어가면 락커에 짐을 맡겨야 한다. 모처럼 가방 없이 홀가분한 몸으로 그림을 감상했다. 그림들은 유명한 작품도 많았지만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서 내 시선을 그다지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번잡하지 않은 미술관을 산책하듯 걷는 기분이 꽤 상쾌했다. 방처럼 구성된 전시장마다 큰 창들이 있었고, 빛과 온도와 공기의 습도가 알맞았다. 그러다 문득 한 전시장에서 창밖을 보았고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그곳에 작품이 있었다. 바로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 풍경이었다. 창틀이 프레임이 된 그 풍경을 나는 그 어느 그림보다 오래 바라보았다.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미술관 건물의 가운데에 나무들이 우거진 중정 정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건물 밖으로 나가 정원의 벤치에 앉아 그곳에서 보이는 미술관의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오래되어 낡고 부서진 타일 난간 위로 보이는 한가로운 건물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화롭게 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아주 오래전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정원에서 수도원이었던 미술관을 바라보니 예전에 이곳에 살던 수도자들이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은 경건한 고요함이 느껴졌다.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싶어 떠난 여행이지만, 때로는 힘들 때가 있다. 낯선 곳에서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조금씩 지쳐가고 그 피로가 쌓이면 탈이 난다. 그전에 쉬어야 한다. 그래서 하루쯤은 아무 계획 없이 걸어본다. 마음에 드는 카페가 보이면 들어가서 커피도 한잔 마셨다가, 작고 귀여운 소품 가게에 들러 별로 쓸모는 없어 보이지만 예쁜 기념품도 하나 산다. 나를 위해서.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기분을 살피며 즐거운 생각을 한다.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종업원에게 평소보다 더 활짝 웃으며 인사도 해 본다. 머리와 마음에 있는 생각들을 비워내고 다독여본다.
세비야 미술관의 정원에서 나는 그렇게 쉬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정말 괜찮아진 것 같았다.
미술관 밖으로 나오니 길에서 그림을 팔고 있었다. 누군가가 직접 그린 듯한 그림들을 구경하고 있는 내게 그림을 팔던 그가 다가와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나는 세비야의 강 풍경이 그려진 그의 그림을 한 점 샀다. 그는 그림을 낡은 종이에 포장해서 건네주며 또 수줍게 웃었다.
세비야를 떠나는 날,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커플이 세비야에서 추천할 만한 곳을 물었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세비야 미술관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였다.
“산책하듯 들러 보세요. 정말 괜찮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