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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Luna Apr 18. 2023

집시의 슬픈 춤, 플라멩코


 세비야의 길거리 상점에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의 사진이 많았다. 부채를 들고 풍성한 볼륨의 드레스를 입은 채 고혹적인 자태로 포즈를 취한 그녀들은 플라멩코를 추는 중이었다. 세비야에서의 어느 저녁, 나는 미리 예약해 두었던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갔다. 내가 간 곳은 세비야 대성당 근처 ‘Teatro Flamengo Sevilla’라는 소극장이었다. 무대나 좌석의 배치가 공연을 보기에 적당히 편안했다.

  그리 밝지 않은 조명 아래 펼쳐진 그날의 공연은 슬펐다.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무용수들의 눈빛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슬픔이 담겨있었다. 집시의 춤이라서 그런 걸까. 모아놓았던 마음속 아픔과 깊은 한을,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내는 동작들을 좇는 내 눈도 따라서 슬퍼졌다.

 여자 무용수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녀에게 유독 시선이 갔다. 젊은 무용수들처럼 날씬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육중해 보였지만, 그녀의 무대 매너와 공연 내공은 남달랐다. 뿌리내려 살 수 있는 집이 없다는 서러움, 어디에 하소연할 길 없었던 멸시의 한이 그녀의 피에 아직도 흐르는 걸까. 주름진 얼굴에서 피어나는 미소조차 구슬프게 빛났다. 우아한 몸짓으로 폭이 넓은 드레스를 휘저으며 타닥타닥 바닥을 치는 그녀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대의 바닥을 보았다. 그녀가 바닥을 타닥타닥 치는 곳의 무대 바닥은 다른 곳과는 달리 칠이 벗겨지고 헐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세월, 저곳에서, 바로 저 자리에서 그녀는 무거운 구두를 신고 바닥을 쳤을까. 바닥의 칠이 벗겨질 정도로 발을 굴러댔을까. 타닥타닥.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 옆에는 머물고 싶은 지친 마음도 함께 했다. 가지 말라고 잡을 때에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잡는 이가 없어지면 서글퍼진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세비야 대성당의 야경이 처연하게 눈부셨다. 어디선가 서러운 눈물이 타닥타닥 떨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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