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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Luna Apr 11. 2023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곳, 세비야


겨울 한낮인데도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햇살이 따가웠다. 바르셀로나의 뜨겁고 바스락한 햇살이 아닌, 조금 더 잔잔하고 기분 좋은 햇살이 가득한 이곳은, 오렌지나무가 가로수인, 걷고만 있어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도시 세비야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 세비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이곳을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지나치지 않게 친절하고, 뭔가 모르게 품격이 느껴지는 다정한 정중함을 풍겼다. 내가 사람들을 볼 때 딱 좋아하는 그 부분이다. 구글맵이 없으면 길을 어떻게 찾을까 싶은 미로 같은 골목들 사이에서 지도를 그만 보고 그냥 길을 잃었다. 걷다 보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결국 만나게 될 걸 안다. 뭐 그리 조바심 낼 필요도 없었다. 여긴 세비야니까.

 세비야에서 내가 머문 숙소는 pl.de S.Leandro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세비야의 전통 3층 주택이었다. 나는 2층에 있는 방을 일주일 동안 썼다. 2층에는 내가 머문 방 말고 2인실이 하나 더 있었는데 3일 동안 그곳에 아무도 오지 않아 한동안 2층을 조용히 혼자 쓸 수 있었다. 3층에는 옥상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고 옥상에서 빨래를 널 수 있었다. 빨랫줄에 탁탁 털어 옷을 널어 말리는 기분은 꽤 괜찮았다. 오후가 되면 스페인 남부 햇살에 기분 좋게 뽀송해진 옷을 걷어 방으로 가져왔다. 숙소에 상주하고 있는 한국인 스텝이 매일 아침을 차려주었다. 아침마다 먹는 한식 덕분에 한국음식도, 한국도 별로 그립지 않았다. 어느 날은 내가 좋아하는 김밥을 예쁘게 말아내어 주기도 했다.

 걷고 또 걸었다. 유럽의 돌길을 발이 아프도록 매일 걸었다. 스페인 광장까지 걸어갔고, 광장 안을 걷고, 이어진 강가까지 걸어내려 가 한참 동안 강 풍경을 바라보다 돌아왔다. 세비야대성당 안 오르막길을 힘겹게 걸어 히랄다탑에도 갔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세비야의 풍경을 눈 속에 많이 담아두고 싶었다. 중세 시대에 온 듯한, 묘한 비현실감과 평화로움이 공존하는 시간들이었다. 저녁이면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 영업 시작을 알리는 파라솔을 펼치던, 숙소 앞 광장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타파스에 맥주를 마셨다. 숙소에 돌아와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나는 벗어나지 못했다. 세비야의 햇살과, 오렌지 나무와, 바람 냄새와 사람들의 미소가 어제처럼 맴돌았다.

 그 순간들이 그립고 감사하다. 그라시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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