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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Luna Apr 04. 2023

여행은 낮술


 바르셀로나는 걷기 좋은 도시였다. 습한 기운 없는 기분 좋은 햇살 아래 펼쳐진 평지의 반듯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주요 관광지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가우디의 유명한 건축물 까사밀라와 까사바트요는 바로 근처에 있었고, 구엘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택시를 타고 잠깐 이동했다. 좀 걷다 보면 해운대 같았던 바르셀로나타 해변도 나타났다. 카탈루냐 음악당과 피카소 미술관도 가까웠다. 여기저기 다니며 어느 정도 방향과 거리가 익숙해진 어느 날, 숙소 근처를 산책하다 바르셀로나 대성당에 갔다. 고즈넉한 성당 앞 광장에는 벼룩시장이 꽤 규모 있게 펼쳐져 있었다. 작은 장식품, 액자, 그릇, 반지, 그림, 엽서, 헌책 등등 종류가 다양했다. 물건들을 살펴보다 문득, 아주 먼 옛날 이 물건들을 가지고 있던 주인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슬퍼졌다. 나는 이 세상에 없는데, 내가 쓰던 물건들을 누군가 판매하고, 구경하고 구입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혼이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면, 마음은 어떨까. 마침 성당 안은 미사 중이었다. 나는 열려 있는 문으로 성당 안에 살짝 들어가 성가가 울려 퍼지는 경건한 성당 안을 잠시 바라보다 나왔다.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은 바르셀로나 대성당 맞은편 콜론 호텔 루프탑 카페이다. 호텔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6층으로 가면 된다. 이미 입소문이 나서인지 한국인, 중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부분 샹그리아를 마시던데 나는 맥주를 마셨다. 눈을 뜨기 힘든 따가운 햇살 아래, 바르셀로나 시내와 맞은편 대성당이 보이는 뷰 앞에 놓인 맥주잔을 보니, 내가 여행을 떠나왔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첨탑 부분에 부착된 삼성전자의 커다란 광고가 무척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성당의 복원을 지원해 주고 광고를 계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협약이 나쁘지만은 않겠다 싶었다. 덕분에 나는 멀고 먼 바르셀로나에서 삼성 휴대폰 옆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김우빈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었으니까.

 여행지에서 마시는 낮술이란, 그대로 해방감이다. 그것도 노천카페나 루프탑 카페처럼 개방된 곳, 강이나 바다가 보이는 시원한 곳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시간이 늦어 집에 돌아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대리기사를 부르거나 택시를 탈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밝은 햇살 아래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만끽하며 자유를 가득 담아 그 순간을 즐기면 그만이다. 생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약간 발그레해져도 아무 상관이 없다. 기분은 더 좋아지고, 숙소까지 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길 또한 상쾌할 테니까.


 바르셀로나의 따뜻했던 한낮, 루프탑에서 흐뭇하게 마셨던 한잔의 맥주는 내 여행을 더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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