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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Luna May 16. 2023

라 가리가의 카모메 식당

 

레스토랑 ‘MINA’S’에 처음 갔을 때, 영화 카모메 식당이 떠올랐다. 헬싱키에서 조그만 일식당을 운영하는 일본인 ‘사치에’ 역을 맡았던 배우 고바야시 사토미의 얼굴이 민아 사장님 얼굴 위로 겹쳐졌다. 이미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시는 민아 사장님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한참 떨어진 소도시 ‘La Garriga’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 ‘MINA’S’를 운영하고 계셨다. 이곳의 유일한 한국인인 민아 사장님은 적극적인 마인드와 발 빠른 추진력으로 자신의 공간을 꾸려내셨고, 매력적인 재치와 친화력, 눈이 번쩍 떠지는 음식 솜씨로 스페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광장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몇 안 되는 상점 사이에 ‘MINA’S’라는 예쁜 식당이 있었다. 내부는 민트 계열의 벽지와 스페인 특유의 타일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아늑하면서도 심플한 인테리어에서 세련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오픈 주방이라 손님들을 마주 보며 직접 요리를 하는 아름다운 사장님을 홀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MINA’S의 메뉴는 일식인데, 한국풍 일식이라고 해야 할까. 김밥, 스시, 야끼소바, 교자, 덮밥 등을 손맛 가득 맛깔스럽게 직접 사장님이 요리하셨다. 연어 아보카도 덮밥은 한국에서 많이 먹던 명란 아보카도 덮밥보다 훨씬 깔끔하게 맛있었고, 야끼소바의 소스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스시와 김밥, 직접 빚어서 튀겨내는 교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한국이나 일본에서 먹는 것보다 고급스러운 맛을 자랑했다. 어쩌면 이렇게 요리를 잘하시냐고, 요리를 배우셨냐고 물었더니, 일본에서 살았던 적은 있지만 체계적으로 요리를 배운 적은 없다고 하셨다. 게다가 사장님은 본인이 음식을 만들어 팔 것이라는 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스페인에 와서 살게 된 이곳은 관광지도 아니고, 마을 사람들도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한적하고 오래된 스페인 소도시에서 일식당을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모르셨단다. 입소문이 나서 저녁 시간에는 현지 사람들로 꽉 차고, 포장 주문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레스토랑의 사장이 될 줄은 정말 모르셨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이해될 것 같은 느낌은 뭐였을까.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가 아는 사람 없는 헬싱키에서 묵묵히 자신만을 믿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듯, 어느 곳에서건 나의 신념을 믿고 지켜나갈 수 있다면, 결국엔 그것이 내 삶, 내 인생이 되어간다. 나의 마음과 하고자 하는 생각과 의지, 흔들리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믿고 조금씩 나아가 보는 거다. 그 마음과 생각들이 하나 둘 모여 내가 되고, 인생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그 또한 내 마음이 시킨 거였을 테다. 늘 그렇듯 인생은 알 수 없게 흘러가는 법이니까.


 하루는 저녁 시간에 숙소에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서진이가 엄마 가게에 일손을 도우러 가야 한다고 나설 채비를 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나도 같이 가자며 따라나섰다. 낮에 맛있게 음식을 먹은 감사한 마음도 있었고, 사장님을 돕고도 싶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을 늦게 먹어서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식당은 손님들로 붐벼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하는 서진이는 주문과 계산, 서빙을 알아서 척척 잘했고, 그렇지 못한 나는 주방에서 설거지부터 했다. 밀린 설거지가 끝나면 눈치껏 덮밥 플레이팅도 하고, 서빙도 도왔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몰라 빙긋 웃기만 하고 음식을 내어주어도 손님들은 ‘그라시아스!’하고 웃으며 고마워했다. 정말 남김없이 깨끗하게 그릇을 비워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나조차 흐뭇해졌다. 사장님은 내게 미안해하시며 이제 그만 들어가라고 등을 떠미셨다. 나는 설거지를 하다 접시를 하나 깨 먹기도 해서 오히려 더 방해가 된 건 아닌가 자책도 들었지만 바쁜 시간에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 먼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몸도 마음도 홀가분했다. 밤이 꽤 깊었다.

 광장 옆 맥주 바에는 밤을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이 맥주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숙소로 돌아가 맥주를 한잔 마셔야지 생각했다.


 밤이 깊었다. 어쩐지 용기가 났다.

 달이 고요하게 빛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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