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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Luna Jun 20. 2024

갠지스에 머물다

 인도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도로 상황이었다. 델리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던 길에 보았던 광경은, 내가 인도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 나게 했다. 도로에는 차선이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차선을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차선을 3차선, 4차선으로 만들며 마구 끼어드는 차량들과 그 사이에 역주행을 하는 차량, 소와 말, 걸어가는 사람들까지 공존하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인데, 더 놀라운 건, 아무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끼어들고 옆에 바짝 붙어 있는데 어째서 부딪히지 않는 걸까. 접촉사고, 교통사고가 수없이 일어날 것 같은데 말이다.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바라보고 나는 알아차렸다. 그 카오스 속에는 인도인들만의 질서가 있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차선이 있는 듯했다. 법도 경계도 없어 보이지만, 함께 천천히 가고 있었고, 아무도 다치지 않게 조심했다. 그들만의 배려는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 끼어든다고 아무도 화를 내지 않는 것. 클랙슨을 울리고 위협하지 않는 것이었다. 클랙슨을 울릴 경우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신호일뿐, 그 경적 소리엔 날카로운 감정이 섞여있지 않았다.


바라나시의 번화가도 마찬가지였다. 무수한 사람들이 오가는 중에 아무도 서로에게 몸을 닿게 하거나 발을 밟아서 불쾌감을 주는 이가 없었다. 길 중간에 소가 엎드려 있어도 조심스럽게 피해 가면 그만이었다. 그 누구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여길 어떻게 걷지, 라며 경악하던 나도 인도인들의 질서를 이해하고 어느새 그들 사이를 함께 걷고 있었다.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면서.


번화가를 벗어나 갠지스 강가를 걸었다. 가트를 지나 화장터를 지나 하늘과 강을 보며 걸었다. 강 위로 쏟아지는 햇볕이 따갑다 싶으면 강을 등지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상점을 구경하기도 하고 카페에 가기도 했다. 그러다 강바람이 궁금하면 다시 강가로 나왔다. 길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골목을 걷다가도 강바람 냄새가 나는 곳으로 방향을 돌리면 갠지스강이 그곳에 있었다. 강을 지표 삼아 한 나절을 걸었다. 강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부인도 화가인데 지금은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있다고 말해주며 자신과 부인이 그린 그림을 자랑스럽게, 조금 들뜬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 많았다. 큰 그림은 배낭에 넣으면 구겨질 것 같아 작은 사이즈의 그림을 한 점 샀다. 그가 신문지에 그림을 포장해 주는데 조금 서툴러 보여 내가 도와주었다. 큰 구슬을 실에 꿰어 좌판에 늘어놓고 팔고 있는 여인은 색채감이 뛰어났다. 알록달록한 구슬의 색깔들이 귀엽고 조화로웠다. 같이 걷던 일행이 그녀에게서 팔찌를 사서 함께 여행 온 우리들 모두에게 선물로 주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식당 옆에 책방이 보여 들어가 보았다. 인도어로 적힌 책은 읽을 수 없어 구경만 했고, 작고 귀여운 수첩과 책갈피를 몇 개 샀다. 평온한 오후였다.




여행 기간 동안 음력 설날이 있었다. 그날 새벽엔 갠지스 강에서 보트를 타고 일출을 보기로 했다. 보트 위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바라나시를 바라보았다. 일 년 내내 연기가 멈추지 않는 화장터도, 아름다운 가트도, 강 위에서 보는 모습은 익숙하고 애틋했다. 그 속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벗어나면 보이는 법이다. 한걸음 뒤에서, 또는 걷다가 뒤돌아서서 바라보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들이 설렘을 준다. 그래서 떠나와야 알게 된다고 했다. 갇혀서 보이지 않아 허우적댈 때는 벗어나야 명징하게 보인다.


 핑크색 해가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순간과 순간, 순간 사이의 찰나가 무척 경건했다. 해를 바라보는 내 눈앞으로 새가 날고 있었다. 소원을 빌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고, 나의 무탈과 행복을 빈다. 사람들의 기도가 강물에 떠다녔다. 내 기도 위로 아침 햇살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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