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두려움 대신 평온을 배웠다
아버님의 마지막 배웅 날,
나는 며느리로서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 들어갔다.
누군가의 죽음을 직접 마주하는 일,
그리고 그 죽음을 ‘배웅해야 하는 사람’의 자리에 서는 건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차가운 이마에 손을 얹으며
“잘 가세요.”
그 말을 꼭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날의 기억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 나를 괴롭힐것 같았다.
부검 때문에 하관은 가려져 있었지만
눈은 편히 감겨 있었고,
이마는 고요하게 식어 있었다.
손끝으로 그 이마를 지그시 눌렀을 때,
전해지던 차가움과 단단함이
이상하게도 내 안의 불안과 공포를 가라앉혔다.
살아계실 때의 거친 숨결도,
분노 섞인 목소리도 없는,
그저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아버님과 함께한 1년 중
가장 깨끗하고 편안한 얼굴이었다.
장례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남편은 상주로서,
나는 며느리로서,
남편의 누나 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문상객을 맞았다.
낯선 의식 속에서
나는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었다.
낯설고, 버거운 자리였다.
꽃 화단 속 한복 차림의 아버님 영정사진을 바라볼 때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단지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아버님에 대한 애증,
그리고 ‘죽음’이라는 단어가 던지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만들어낸 눈물이었다.
한 인간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삶이 얼마나 유한한지를.
그날의 눈물은 애도의 눈물이자,
두려움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처음으로 ‘죽음’을 온전히 마주한 순간의 눈물이었다.
장례를 치르는 사흘 동안,
넷째 누나와 시어머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버님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을까.
그들의 오랜 상처를 생각하면
누구도 그 행동을 쉽게 비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토록 긴 세월 얽혀 있던 가족이라면,
그 마지막 인사만큼은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이 교차했다.
용서와 미움, 연민과 거리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단지 ‘죽음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많이 울었다.
그 눈물엔 슬픔보다도
이해되지 않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낯섦이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