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서열의 끝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집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어떤 공기였을지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숨이 얇아지는 공간.
웃음이 허락되지 않는 집.
그 집에서 아버지는 ‘가장’이 아니라,
폭군이었다.
술과 폭력,
그리고 절약이라 부르기엔 잔인할 정도로 인색한 구두쇠의 삶.
돈이 아까워 가족의 끼니를 줄였고,
사랑은 끝내 주지 않았다.
자식들에게 어린 시절은 공포였다.
1970년대 생인 남편은
볼일을 본 뒤 휴지 대신 종이를 구겨 사용했다고 말했다.
먹을 것이 없어 감자와 옥수수로 버텼고,
그래서 지금도 감자와 옥수수를 싫어한다.
“그게 정말 청담동에서 살아온 사람이 한 말이 맞아?”
내가 되물으면,
남편은 그저 씁쓸하게 웃는다.
겉으로는 부자 동네,
안으로는 결핍의 집.
그 집엔 풍요 대신
두려움만 쌓여 있었다.
남편은 다섯 남매 중 막내였다.
게다가 ‘대를 잇기 위해 어렵게 낳은 아들’도 아니었다.
그저 낳다 보니, 아들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서열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누가 먼저 밥을 먹는지,
누가 먼저 말할 수 있는지,
누가 감히 웃어도 되는지—
그 모든 기준은
아버님의 입에서 나왔다.
그 질서는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배를 위한 시스템이었다.
남편은 그 서열의 바닥에 있었다.
겉으로는 ‘귀한 막내 아들’이었지만
실상은 늘 무시당하고
시키는 말만 해야 하는 존재였다.
어린 시절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누나들이 입던 옷을 물려입어
낡디 낡은 치마를 입고 다니던 아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유치원조차 가지 못했다.
유치원과 맞닿은 집의 담장 너머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세상을 배워야 했다.
“나는 놀아본 적이 없어.
어릴 때 놀 권리가 없었거든.”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 문장이 한 사람을 얼마나 설명하는지 깨달았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화풀이 대상은
늘 어머니와 자식들이었다.
돈은 술과 다른 여자들의 몫이었고,
폭력은 가족의 몫이었다.
한 명이 잘못하면
어머니까지 포함해
여섯 명이 함께 벌을 받았다.
그 불합리의 시간은
끝내 누구도 구해주지 못한 채
그대로 흘러갔다.
다섯 남매는 결국
그 폭력에서 멀어지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었고,
뒤늦게 어머니를
황혼이혼 시켜드렸다.
그제야 어머니는
폭력 없이 숨 쉬는 법을 배웠다.
늦게 찾아온,
세상의 빛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