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고독, 그리고 남겨진 것들
아버님은 평생을 ‘가장의 자존심’으로 살았다.
가족을 책임진다는 이름으로,
사랑보다 두려움을 다른 방식으로 내보인 사람.
그의 삶에는 언제나 빛과 그림자가 함께였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빛 뒤에는
언제나 고독이 있었다.
어느 날, 아버님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내셨다.
“작년 일인데 말이야… 그날도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버님은 그때를 떠올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명상하고 있었거든.
근데 밖에서 스포츠카라는 게 지나가더라고.
소리가 딱 들리니까, 내가 그 생각이 들었어.
‘저 차, 법인으로 사면 세금 거의 안 내고 살 수 있지.’”
그 말에 내가 웃으며 물었다.
“아버님도 그런 거 다 아세요?”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다 알지. 나도 다 안다!.
근데… 아들한테는 해주기 싫다.”
잠시 침묵.
그리고 그날의 다음 장면을 이야기처럼 이어서 들려주셨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어.
택배인 줄 알았는데, 우편물이더라고.
소파에 앉은 채로 뜯어봤지.
근데… 그게 이혼 서류였어.”
아버님은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평생 내 세상 안에 있다고 생각했던 가족이
우편물 한 장으로 나한테서 나가버린 거야.”
그리고 그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이… 나를 배신했어.
이혼도, 다 그놈이 주동자야.”
분노처럼 들렸지만,
그 말속에는 오래 쌓인 외로움의 그림자가 있었다.
“아들이 나를 배신했어.”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
아버님에게 이혼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재산을 나눠야 하는 분노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분노의 반대편에는
늘 고독이 있었다.
그는 때때로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신의 지난 삶을 변명하듯,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히 딸들의 불안정 하고 불행한 가정사에 대해 많이 들을수가 있었다.
그는 결국 그 외로움 위에
청담동의 5층 건물과
몇 채의 부동산 그리고 현금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이렇게 됐더라.
이 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실감이 안 난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 재산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돈이 많았지만,
그 돈으로 관계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되돌릴 수 없는 관계의 보상이라도 받듯
새로운 관계를 사 들였다.
건물은 그의 삶을 대신해
조용히 서 있었지만,
그 곁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형태와 숫자뿐인 재산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장례식때도 문상객들 앞에서 울고 있던 건
나 혼자뿐이었다.
남편의 누나들은 울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엔 해방과 미묘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슬펐다.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님의 모습을
그들 자신이 조금씩 닮아 있었다.
그건 어쩌면
가장 깊은 비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