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 있던 곳
나는 이들 틈에서 늘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남편의 누나 네 명은 일찍이 각자의 가정을 잃었다.
셋은 남편을 떠나보냈고, 한 명은 결혼을 내려놓았다.
‘사별’과 ‘이혼’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등에 오래 붙어 있었고,
그 상처는 서로를 묶어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홀로 남은 어머님까지
다섯 명의 여자가 만든 집은,
겉으로 보기엔 끈끈했고, 안으로는 터질 듯 조용했다.
남편은 그들 곁에 서 있는 유일한 남자였다.
보호자이자 버팀목이자, 때로는 들숨과 날숨 같은 존재.
누나들은 남편에게 기대고,
남편은 말없이 그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처음엔 그 모습이 참 따뜻해 보였다.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비슷한 슬픔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온기 속에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습관 같은 슬픔’ 이 깃들어 있었다.
오래된 냉기가 방바닥 깊이 스며 있다가
발끝에 전해지는 느낌처럼
겉으론 평온했지만, 속은 늘 서늘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환대를 받았지만,
그 환대엔 경계심이 미세하게 섞여 있었다.
겉으로는 막내의 새로운 가정을 축복했지만,
눈빛은 언제나 한 걸음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깊이 다가가지 않기로 했다.
감정으로 버티기엔, 그 집의 공기는 너무 낯설었다.
사건들은 그 뒤로 더 빠르게 무너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관계는,
말하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오해로 번졌다.
서로 너무 잘 아니까, 서로를 더 믿지 못했다.
나와 남편은 그때부터
가족이 아니라 ‘둘’이 되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분리되기로 한 것이다.
혈연으로 뭉친 그들 틈에서
나는 이방인이 맞았다.
남편의 누나들과 어머님은,
이방인인 나에게 처음부터 따뜻했다.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단단하게 뭉쳐 있던 가족이었지만 나를 경계하기보다는, 오히려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다가왔다.
특히 첫째와 셋째 누나는 조용히 나를 따로 불러
가족 이야기를 풀어놓곤 했다.
겉으로는 “가족 소개”처럼 들리는 이야기였지만,
듣다 보면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숨겨진 기록처럼 느껴졌다.
나는 듣기만 했다.
사실을 확인하지도, 누구 편을 들지도 않았다.
대화가 끝나면 그 말들을 내 안에 넣고 봉인했다.
그리고 다른 시누이를 만날 때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보관해주는 비밀 창고 같은 존재가 된 듯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내 안에는
남편의 누나들에 대한 개개인의 데이터가 쌓여갔다.
어떤 말은 고백이었고,
어떤 말은 변명처럼 들렸고,
또 어떤 말은 누군가를 겨냥한 은근한 방어였다.
그리고 마지막 1년,
아버님을 모시며 살게 되었을 때
아버님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그 데이터의 마지막 조각이 되었다.
이제 돌아보면,
그 모든 이야기는 단순한 ‘가족 소개’가 아니었다.
서로의 헛점을 먼저 털어놓음으로써
내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려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들이 나에게 마음을 연 것이 아니라,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나를 거울처럼 세워놓았다는 것.
그들 안에 있으면서도 나는 점점 더,
‘그들 밖에 서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