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속에서 자라난 한 아이가, 옷으로 자신을 증명해 가기까지
남편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모든 집이 우리 집처럼 사는 줄 알았다.
아버지의 고함, 어머니의 침묵, 누나들의 울음, 그게 세상의 전부였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야.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그렇게 믿으며 살았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면서 처음으로 세상을 봤다. 친구들의 웃음소리, 가족끼리의 대화, 깨끗하고 딱 맞는 새 옷과 운동화, 그런 평범한 풍경들이 너무 낯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 집은 정상이 아니었다는 걸.
항상 첫째 부터 내려오던 누나들의 여자 옷을 물려 입던, 낡고 헐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남자 아이.
입을 때마다 어깨가 작아지고,
시선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때 처음으로 품었던 감정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갈망이었다.
“나만의 옷을 갖고 싶다.” 누구의 것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한 내 옷.
그날 이후로 옷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었다. 그에게 옷은 존재의 증명이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자존심의 형태였다.
집 안의 폭력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술에 취한 아버님이 소리를 지르고, 어머님은 그 곁에서 말을 삼켰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버님의 팔이 남편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고, 남편은 순간적으로 그 손목을 붙잡았다.
“이제 그만하세요.”
짧은 한마디. 하지만 그 한마디는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낸 자기 목소리였다.
그날 이후, 아버님은 다시는 아들에게 손을 들지 않았다.
그 장면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두려움의 끝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지켜낸 날이었다. 그 순간 이후로 그는 두 번 다시 울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하는 아이였다. 늘 숨죽이고, 감정을 삭이며 자랐다.
그 묵힌 감정이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는 노래를 좋아했다. 울분과 설움, 답답함이 고스란히 실린 노래. 그건 그에게 유일한 해방의 통로였다.
학교에서는 싸움과 노래로 이름을 알렸다. 노래를 부를 땐 누구보다 자유로웠고, 싸움을 할 땐 누구보다 솔직했다. 그 극단적인 두 가지가 그를 지탱하게 만들었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그는 자주 수업시간에 책을 덮고 그 위에 머리를 얹은 채 잠을 잤다.
어느 날 친구가 장난삼아 그의 책을 펼쳐봤고, 그 순간 그는 친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는 나중에 말했다. “내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책을 한 번도 펴본 적이 없기 때문이야. 그 책을 펼치는 순간, 내 자존심이 무너졌던 거야.”
그건 폭력의 흔적이 남긴,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만큼 세상에 대한 자존심이 강했다.
그는 패션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단호했다. “패션으로는 돈 못 번다. 취업해라.” 그의 꿈은 그렇게 한 번 더 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끝으로 세상을 만들었다.
천을 자르고, 선을 그리고, 곡선을 따라가며 묵혀둔 감정을 한 땀씩 꿰맸다. 그에게 디자인은 말 대신 사용하는 언어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술에 취해 조립식 장난감을 사주던 날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완성하고, 다시 풀고, 또 완성하고를 밤새 했다고한다. 받을 수 있는 선물이 그 한 번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조립과 해체의 반복이 그의 인생이 되었고, 결국 그가 디자인을 통해 감정을 조립하고, 삶을 다시 세우는 방식이 되었다.
그는 결국,
감정으로 자라난 소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감정을 짓는 디자이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