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의 끝에서

by dear M

아버님은 생전에 박정희 대통령 부부를 진심으로 존경하셨다. 그래서 남편은 그분들이 모셔져 있는 절에 아버님을 모시기로 했다.

온전히 남편의 결정이었다.


아들로서 마지막 책임을 다하고 싶다는 그의 뜻을
나는 존중했다. 친척의 도움으로 급히 주지스님과 연락이 닿았고, 그 절에서 49제와 위패를 모시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종교가 없다.
그저 남편은 이번만큼은 아버님이 원했던 곳에 아버님을모시는 게 마지막 효도라 여겼다.


매주 한 번씩, 여섯 번의 주를 절에 올랐다. 아버님을 위한 제사와 기도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단지 아버님만을 위한 의식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에게 절은 하나의 음악관이자 미술관 같았다. 향 냄새와 목탁 소리,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소리가 서로 다른 악기처럼 어우러져, 조용히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 되었다.


대웅전 천정은 붉음과 푸름, 녹색과 금빛이 얽혀 강렬한 생명의 숨결을 내뿜는 거대한 캔버스 같았다.


살짝 휘어진 단청의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로 만나는 처마 끝 풍경과 그 뒤로 보이는 서울 시내, 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등들이 그 자체로 한 폭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제사가 끝나면 딸은 대웅전 마당에서 뛰어놀았고,
우리는 주지스님과 차담을 나누며 마음을 다스렸다.


종교도 없던 우리가 아버님이 아니었다면
이런 색과 소리, 그리고 평온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남편과 손을 맞잡고 절 안을 걸으며 나누던 그 대화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히 이어지고 있다.


절에 가기 전마다 남편은 누나들과의 단톡방에
오늘 절에 들를 것에 대한 내용의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누나들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49일 중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던 누나들이, 49제 마지막 날 갑자기 나타났다.


제사가 시작되고 얼마 후

세명의 누나가 검정 정장을 입은 채 무거운 얼굴로 들어왔다. 그녀들의 표정은 슬픔이 아니었다.

마지막 제사를 마치고,
절에서 준비해 둔 음식을 나누며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아버님을 위한 마지막 식사 자리였다.
그 자리에 여자 두 명은 없었다.


남편과 세 명의 누나, 그리고 나와 딸, 남편의 조카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누나들 중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건물 관리비랑 임대 수익은 왜 아직 정리가 안 됐어?”
“임대료는 한 달에 얼마가 들어오는데?”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활화산 같은 벌건 얼굴의 첫마디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그 질문들 속엔 궁금증보다 불신이 더 짙게 묻어 있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다들 미친 거 아니야? 제발 정신들 좀 차려!”라고 말한 후 말을 이어갔다.
“아직 두 달도 지나지 않았어.”
누나 중 한 명이 집안에 들어와서 시작된 그 일도 정리가 안 됐고, 금고 도난 사건도 정리가 되지 않았어.


그 일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어떠한 계산도 할 수 없어.”

남편은 단호했다.


그리고 그 말에 식탁 위의 공기가 굳었다.
이내 큰소리가 오고 갔다.

"그건 너희 둘과 그분의 문제고 우리는 계산을 해야지"
서로를 향한 말들이 부딪히고 튕겨나가며
애도의 자리는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나는 딸과 조카들의 손을 잡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절 구경하자.”

아직 식지 않은 향 냄새와

멀리서 들려오는 그들의 언성이 목탁소리와 함께

뒤엉켜 들려왔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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