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보다 먼저, 작은 비즈 한 알

손끝에서 시작하는 작은 공부

by Ms Lara

곧 1학년이 되는 킨더반 E는 아직 연필을 주먹으로 꽉 쥐곤 한다. 흔히 말하는 ‘주먹쥐기(fist grasp)’ 형태다. 단순히 잡는 모양만 문제는 아니었다. 주먹을 쥔 채로 손끝의 힘까지 약하다 보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손가락 끝의 감각을 깨워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아이들이 조용히 쉬는 시간(quiet time), 복도 책상에 나란히 앉는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작은 비즈와 뼈대가 단단한 파이프 클리너를 꺼낸다.


글쓰기를 위한 작은 준비 운동

비즈 꿰기.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글쓰기를 위한 가장 작은 준비 운동이다. 아이들은 주먹을 꽉 쥐면 손바닥 전체의 힘을 쓴다. 하지만 작은 비즈를 집으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엄지와 검지 끝을 이용해 아주 조심스럽게 집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손바닥이 펴지고 연필을 바르게 잡을 때 꼭 필요한 소근육(Fine Motor) 발달 즉 집게손가락의 움직임이 깨어난다.


손끝에서 확장되는 배움의 영역

이 작은 재료 하나로 할수있는 공부는 생각보다 무궁무진하다.


“파란색 세 개, 노란색 두 개. 모두 몇 개일까?”


아이와 색깔 이름을 부르며 비즈를 고른다. 파랑과 노랑을 번갈아 끼우며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는 인지(Cognitive) 개념이 들어앉는다. 단순히 숫자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손끝에서 늘어나는 비즈를 보며 덧셈과 규칙을 몸소 익히는 것이다.


글자 공부인 언어(Language) 발달도 놀이가 된다. 특히 알파벳을 좋아하고 순서에 집중하는 J는 늘 A부터 Z까지 차례대로 비즈를 꿴다. 파이프 클리너에 'A' 비즈를 넣으며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부른다.


“A is for alligator, B is for bear, C is for cat...”


동물 이름에서 시작한 공부는 food, nature, sports 단어들로 이어진다. 손을 움직이며 소리 내어 단어를 맞추다 보니 단어 암기력도 자연스레 늘어난다. 이제 J는 첫 번째 'A' 비즈 하나만 보고도 오늘 공부할 주제를 단박에 알아차린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팔찌

어느 날은 가족의 이름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M, O, M과 D, A, D, D, Y, 그리고 그사이에 'LOVE' 비즈를 집어넣는다. 비즈를 집고, 돌리고, 구멍에 맞추는 작은 동작들은 손 안에서 물체를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아이가 글자 하나하나를 읽어내며 마음으로 기억하게 돕는다.


킨더교실 안에서 이 놀이는 금세 사회성(Social)정서(Emotional) 발달로 확장된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팔찌를 비교해 보기도 하고, 친구에게 필요한 색깔이나 알파벳을 대신 찾아주며 대화를 나눈다.


"여기 네가 찾던 'B'가 있어!"


라는 작은 외침 속에서 협동과 배려가 싹튼다. 스스로 무언가를 완성해 냈다는 성취감은 아이의 자존감을 단단하게 붙들어준다.


작은 비즈 한 알의 힘

비즈와 파이프 클리너만 있으면 소근육(Fine Motor), 인지(Cognitive), 언어(Language), 사회성(Social), 정서(Emotional)까지 아이 발달의 모든 영역(Domains)이 기분 좋게 자극받는다.


E의 연필 잡기를 도와주려 시작한 이 작은 활동은 이제 예쁜 팔찌가 되어 엄마의 손목으로 향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배움은 늘 예상보다 작은 곳에서 시작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어떤 날의 진짜 학습은 연필과 공책이 아니라, 작은 비즈 한 알에서 시작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