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자연인

by Ms Lara

주니어 킨더(JK) 시절부터 J는 우리 반의 ‘교실의 자연인’이었다. 교실 안에서는 늘 신발을 신고 있어야 한다는 학교 규칙이 있었지만 J에게 양말과 신발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구속일 뿐이었다. 신기면 벗고 다시 신기면 홀라당 벗어던지기를 수십 번.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들은 일찌감치 포기 선언을 하기도 했다. "라라, 신겨봤자 2분도 안 돼서 벗을 텐데 힘 빼지 마."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J가 이 규칙을 몸으로 익힐 때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신발을 찾아다 주며 '반복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J도 신발을 신고 있는 시간이 눈에 띄게 길어졌다. 내 노력이 빛을 발하는구나 싶어 뿌듯해하던 찰나 내 커피 브레이크를 대신 커버해 주던 동료가 믿기 힘든 제보를 해왔다.


"라라, 그거 알아? J는 네 앞에서만 신발 신고 있어!"


"뭐? 정말?"


설마 그럴 리가. 나는 확인을 위해 평소보다 5분 일찍 교실로 돌아와 살며시 문을 열었다. 아, 동료의 말이 맞았다. J의 신발은 마치 아이들이 한바탕 놀고 난 뒤 구석에 내팽개쳐 둔 장난감처럼 책상 밑에 덩그러니 굴러다니고 있었고 J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맨발로 알파벳 퍼즐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J의 옆으로 다가가 동료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책상 아래에서 J의 발이 바빠지기 시작한 것은. 손은 퍼즐 조각을 맞추며 아주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책상 밑의 두 발은 벗어놓은 신발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발가락 끝으로 신발의 촉감을 더듬고 이리저리 짚어가며 겨우 신발을 찾아내더니 발을 꾸역꾸역 구겨 넣는 게 아닌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시선조차 마주하기 힘든 아이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은 퍼즐에 고정시킨 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신발을 신는 그 정성.


'이놈, J! 내가 온 거 다 알고 있었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이 전혀 밉지 않았다. 오히려 뭉클했다. 다른 선생님 앞에서는 꿈쩍도 않던 녀석이 오직 내 앞에서만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규칙을 지키려 애쓴다는 것. 그것은 J가 지난 시간 동안 끈질기게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나에게 보내는 아이만의 존중 이자 고요한 애정 표현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J의 신발 한쪽은 늘 반쯤 구겨져 있다. 내가 슬쩍 "Shoe" 하고 한마디 툭 던지면 그제야 못 이기는 척 발을 쏙 집어넣는다. 그러다 어느새 다시 슬그머니 발을 빼버리며 여전히 '자연인'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말이다.


비록 눈을 맞추거나 화답하듯 웃어주지는 않아도 내 목소리에 반응해 발을 구겨 넣는 그 소란스러운 몸짓이 우리에겐 가장 밀도 높은 대화다.

완벽한 규칙 준수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한 블록의 수업을 기분 좋게 완주한다.


여전히 맨발을 사랑하는 아이와 그 아이의 '노력하는 마음'을 사랑하는 나의 이 유쾌한 밀당은 아마 졸업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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