쫑알쫑알, 색칠 공부 테이블의 수다
킨더반의 프리 플레이(Free play) 시간. 여자아이 둘이서 색칠 공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다가오는 이스터(Easter) 컨셉의 도안 위에 저마다의 색을 입히는 아이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그리고 그 손놀림만큼이나 바쁘게 오가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아이들의 '수다'다.
나는 아이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을 참 좋아한다. 아이들의 순진함과 호기심이 버무려진 문장들은 때로 어깨가 들썩일 만큼 웃음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깊은 배움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엄마 이름과 비밀번호 사이의 자부심
한참을 쫑알거리던 중, M이 친구 C에게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나 우리 엄마 이름 안다!"
그러자 C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맞받아쳤다.
"와! 나는 우리 엄마 (휴대폰) 비밀번호도 아는데!"
아이들의 세계에서 '정보의 가치'는 어른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친구가 엄마 비밀번호를 안다는 사실에 그 답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 '어마어마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자부심 자체를 인정해 줄 뿐이다.
“Mom"이라는 이름, "450..."라는 비밀번호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내가 슬쩍 물었다.
"M, 엄마 이름이 뭐야?"
M은 아주 당당하게 대답했다.
"Mom(엄마)!"
이름을 안다던 M의 대답에 곁에 있던 C는 그저 자기 색칠 공부에만 집중했다. 'Mom'이 이름이라는 말에 토를 다는 아이는 없었다. 이번엔 C에게 물었다.
"C, 엄마 비밀번호 안다며? 뭐야?"
C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신나게 답했다.
"응! 음... 4,5,0...? 아, 잊어버렸다!"
비밀번호의 첫 세 자리를 내뱉고 쿨하게 잊어버렸다고 말하는 아이들. 그리고는 곧바로 서로의 이스터 버니 색깔을 비교하며 사이좋게 색연필을 바꾼다. 조금 전의 '대단한 정보 공유'는 이미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결과보다 중요한 '안다는 마음'
아이들의 이 대화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어른들에게 이름은 '고유 명사'이고 비밀번호는 '보안'이지만, 아이들에게 그것은 '내가 엄마를 이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는 애정의 크기일지도 모른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니 이름은 'Mom'인 것이 당연하고, 엄마가 휴대폰을 누를 때 곁에서 본 숫자 몇 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한 것이다.
오늘도 킨더반의 색칠 공부 테이블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자랑 배틀이 이어진다. 아이들의 엉뚱한 논리 속에 숨겨진 맑은 진심을 들으며, 나는 오늘도 어른들의 복잡한 세상을 잠시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