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어른 - 손디아
부모님과 친척 이외에 내가 볼 수 있는 어른 군상이었다.
어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어떤 어른들이 세상에 있는지 내가 어른이 된다면 어떨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레퍼런스였다.
엄마아빠, 친구 다음으로 내 마음을 할퀴기도,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말 한마디로 내가 나를 인식하는 세계가 뒤바뀌게 만들었다.
학급에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진 만큼, 학급의 분위기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선생님은 한 학생에게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되고, 한 학생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 영향이 크다.
나와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선생님과 매칭이 됐을 경우에는 1년 내내 서로가 고단했던 것 같다.
나는 내 기질이나 성격, 재능을 제대로 알아 봐 주지 못하는 선생님들을 더 많이 만났다.
인생에 있어서 좋은 선생님이라고 기억되는 분은 3분이다.
그만큼 나한테 잘 맞으면서, 한 명 한 명 다 세심하게 마음을 쏟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나한테 잘 맞고, 나를 다룰 줄 알고, 나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건, 좋은 부모를 만나거나,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어릴 때 많이 들었던 피드백은 너무 느리다는 거였다.
타고난 기질이 느긋하고 진득하고 차분한 편이라서, 말도 행동도 느린 편이었는데 이걸 기다려 주거나 따뜻하게 교정해 주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
어떤 선생님은 심지어는 학부모 면담일에 다른 학부모들이 다 모여 있는 자리에서 엄마한테 "oo 이는 너무 느려서 다른 학생들이 항상 기다려 줘야 해요. 학급에 피해 가지 않도록 oo이 좀 집에서 잘 교육시키세요!"라는 말을 해서 엄마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전까지는 내가 느리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그 이후로 엄마는 집에서 나한테 느리다고 혼을 냈고, 내가 느린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조급한 마음이 많이 생겼다.
하도 느리다는 말을 많이 듣고 그것 때문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혼이 나니까 미리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들였고, 그렇지 않을 때 혹시라도 또 혼이 날까 봐 불안했다.
내 삶의 템포가 느려질 때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힘든 마음이 듦과 동시에 내가 왜 이렇게 빠르게 살아야 하나 회의감이 몰려왔다.
타고난 기질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자꾸 놓였다. 늘 기다려 주는 어른을 갈망하면서 자랐다.
이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던 선생님 중에는 담임을 맡을 때에는 살뜰히 챙기고 유대관계를 친밀하게 맺다가 다음 학년이 됐을 때에는 아무런 책임이나 친밀도를 유지하길 꺼리고, 선을 긋는 선생님들이었다.
손을 내미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한 번 연을 맺으면 그걸 소중히 여기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아무에게나 마음을 열어 주지 않는다. 언제 열리고 닫힐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는 아이들 자신조차도.
아빠가 출근하는 길에 있는 학교에 가게 돼서 아빠 차를 타고 등교를 했다. 그러면 학교 등교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어떤 선생님은 그걸 보고 첫 면담에서 집안 사정이 어려운지를 물은 적도 있다.
그는 아빠 직장을 적은 란을 보면서 아빠가 다니는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아빠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묻기도 했다. 첫 면담에서 아빠 직장 얘기를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어떤 선생님은 굉장히 사무적이었다.
되도록 감정은 배제하고 해야 할 일에 대해서만 의견을 나누고 지도하셨다. 조금 차가웠다.
반면에 나를 세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해 두고 살펴 주신 선생님도 계시다.
그때는 참 싫어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 같다.
알파벳도 몰랐던 나에게 영어를 읽고 쓰는 법을 알려 주셨고, 칭찬과 채찍을 적절하게 주시고,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하고 어떻게 하면 반응하고 어떻게 하면 더 성장할 수 있는지를 발견해 주셨다.
끈기 있고 오기 있는 나의 기질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내 주셨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성격도 자신감이 생기자 어렵지 않아 졌다. 덕분에 활기차졌다. 성적도 평균이 2-30점이 올랐다.
여러 선생님들을 겪으면서 느낀 건,
그럼에도 선생님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본인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따라서 케어하는 데
온 신경과 정성을 쏟는다는 것이다.
단지 내게는 맞지 않고 좋지 않았던 선생님이 있고, 잘 맞았던 선생님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최선의 최선을 써 주길 바라는 건, 학생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어른은 한정적이다.
되도록 더 많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사랑과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관심, 배려를 받으며 자라났으면 좋겠다.
말 한마디의 감사함, 표현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을 느끼면서 자랐으면 좋겠다.
그 어른이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이웃이든 간에 아이들에게 안정기지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자신의 타고난 기질이나 처해 있는 상황에 좌절하거나 상처받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주로 그건 어른들의 말과 행동, 인식, 가치관에서 비롯되어 아이들에게 심어진다.
정말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기억나지 않는 날,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나를 감싸 안아 주고, 손을 내밀어 주었을 많은 어른들에게 감사해서라도 나는 더 잘 자라서 또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나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걸까?
나는 내가 바라는 대로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
내 인생에 좋은 어른을 찾아가야겠다. 내가 닮고 싶은 어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