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Wanderer - nell
내 인생을 내가 바라는 대로 대신 끌고 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순간순간의 고난도 내가 내 몸과 마음으로 다 부딪히며 겪어내야 한다. 어떻게든 끝은 봐야 한다.
그건 책임의 문제다.
나에겐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어떻게든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다.
때문에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도, 감정을 억누르며 나를 도로 그 자리에 돌려다 꾹 앉혀 놓았다.
완벽하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은 충만하고 충분할 때 나온다.
빨리 어떻게든 끝을 보고 싶을 때에는 최선보다는 대충이 자라난다.
'뭐 그렇게 나를 갉아먹으면서 끝까지 써야 하나.'
'이깟 게 내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것도 아닌데.'
원해서 하는 일보다, ‘책임’을 우선으로 두니, 많은 일을 ‘대충 이 정도면...’까지만 했던 것 같다.
4학년 2학기,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에서 새로운 학기를 시작했다.
학기 중간에 취직이 돼서 취직계를 쓰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기나 후배도 생겼다. 아직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을뿐더러, 졸업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와 자꾸 비교하게 됐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지나온 일들이 후회되지만, 그 모든 순간에 충실하게 살아내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어서 누굴 탓할 사람도 없었다.
본래 1학기에 시작했어야 하는 졸업 논문을 학사 일정에 의해 졸업을 2달 앞둔 시점에 시작했다.
복수 전공이라서 같은 시기에 졸업 작품으로 사업계획서와 작업 기술서를 쓰고, 사업을 설명하는 영상을 제작해야 했다.
불안에 불안이 겹쳤다. 멘털을 붙잡기가 어려웠다.
부모님은 졸업과 취업을 기다리고 계셨고, 나는 이번 학기에 어떻게든 졸업을 해내야 했다. 그 가운데 12학점을 들어야 했다. 학점도 따야 하고, 졸업 논문과 졸업 작품도 해내야 하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짓눌렀다.
매일 마음이 토할 듯이 울렁거렸다. 울렁이다 못해 수없이 일렁이는 마음을 다독이며 취업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졸업만 생각하기로 했다.
졸업 작품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흘러갔다.
물론 신경 쓸 건 너무 많았고,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를 내지 못할까 봐 걱정돼서 마음 졸이는 건 있었다. 내가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것도 있었고, 다 처음 하는 거라서 긴가민가 하면서 작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들면서 점점 확신을 가졌다. 너무 잘 만들었고,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다고. 이게 분명히 나한테 자산이 될 거라고.
반면에 졸업 논문은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매주 내가 정한 주제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그 시간이 돌아오는 게 너무 무섭고 괴로웠다. 스스로가 수치스러웠다. 나는 왜 매번 얼어붙어서 말도 더듬거리고 횡설수설하다가 나오는 걸까.
매일을 밤새워서 논문을 찾고 읽고 또 읽고 쉴 새 없이 수업을 듣고 과제하고 논문을 고치는 나날이 반복됐다.
논문을 쓰다 말고 너무 서러워서 왈칵 울어버렸던 날들이 선명하다.
나의 부족함을 초 단위로 느끼니까 자꾸 쪼그라들었다. 최선의 최선을 다해도 나는 계속 부족했다.
이를 악물고 피폐해지는 정신과 마음을 꽉 붙들어 매어 놓고, 부족하다고 했던 점들에 집중해서 나만의 답을 찾아냈다.
처음에 생각했던 방향과는 완전히 달라진 글이 되어갔다.
마지막에는 그토록 듣고 싶었던, "수고했다"는 말을 들었다.
돌아보니, 내 인생에서 그렇게 최선을 다했던 기억은 많지 않았다. 대충 하려는 마음이 자라났을 때, 최선의 최선의 끝까지 쓰는 감각을 오랜만에 써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문제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것도 흔치 않았다.
'인간 소외' 문제에 대해서 썼었는데, 이후에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줄곧 '인간 소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삶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의 깊은 곳에 있던 문제와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더 할 수 있는데, 대충 하려는 마음 가짐을 바로 잡는다.
나를 끝까지 써본 감각이 있어야, 나를 몰아세우지 않으면서도 '이게 내 최선이야.'라고 조금의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나를 사로잡았던 '대충'을 보낸다. 나를 몰아붙이진 않되, 최선을 붙잡는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에 꼼수를 부리지 않을 테다.’ 다짐했다.
그래야 나한테 떳떳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너무 과도한 책임은 내려놓으려고 한다.
타인의 기대와 평가에 따라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는 연습을 해나가고 싶다.
내가 선택한 것만 책임지며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