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함에 대하여
매미가 대차게 울어댄다.
매일 아침 영어회화 수업을 가는 나는 덥고 무거운 어깨에 맨 가방 안에 580ml 용량의 아이보리 색 텀블러를 챙긴다.
햇빛이 유난히 뾰족한 7월의 끝자락, 몇 발자국만 떼어도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버스에서 내려 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학원 옆 카페에 들린다.
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공기가 뜨거워진 팔을 감싼다.
텀블러의 뚜껑을 열고 건네며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 담아주세요” 라며 주문한다.
더위에 얼이 빠진 표정으로 차갑게를 두 번이나 외치자 사장님은 옅은 웃음을 띄우며 “밖에 되게 덥죠. 얼음 많이 넣어드릴까요?” 라고 묻는다.
인중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대답한다. “죽겠어요. 아뇨, 그냥 적당히 넣어주세요.”
커피를 건네 받자마자 입으로 직행한다. 살겠다.
텀블러 안 얼음들이 서로 말이 많다.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강의실로 향한다.
언제나 그렇듯 밝게 인사해주는 리치다. 그의 이름은 리차드인데 우리끼리는 리치라고 부른다.
그는 내 텀블러를 보더니 묻는다.
“텀블러 들고 다니는거 귀찮지 않아?”
“귀찮지. 근데 얼음 녹는게 더 싫어서.”
“미지근한 물이 건강에 좋다던데.”
“근데 난 뭐랄까 미지근한 물 마시면 불쾌하더라.”
“아, 뭔지 알 것 같아. 근데 탈은 안나지.”
학생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인사를 건넨다.
강의실 밖은 너무 뜨거워 미간에 주름이 파이고 안은 너무 차가워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를 정도다.
텀블러 속 작아진 얼음을 바라보며 미지근함에 대해 생각한다.
미지근함이 과연 나를 불쾌하게 만들까라며.
삶이 너무나 미지근해 무기력해질 때를 경계하는 나는 좀처럼 가만히있는 법이 없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나의 기준에서의 생산적인 일들) 불안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불안해했다.
무언가를 하나씩 마치고 불안해하자고 내 자신과 약속한 시점과 맞물려 일단 손에 잡히는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고 챕터를 하나씩 접을때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삶이 너무 미지근해 읽고,
삶이 너무 미지근해 걷고,
삶이 너무 미지근해 매트를 깔고 아사나를 행하고,
삶이 너무 미지근해 쓴다.
미지근함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구나.
그와의 마지막 인사의 이유도 미지근한 탓이였던 것이다.
차라리 차가워졌으면 좋으련만
빌어먹을 미지근한 탓에 이별을 고한 과거의 나를 떠올리는
미지근함이 주는 이로움을 알아가는 지금의 나는 오늘도 뜨거운 햇볕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