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딸기

by 봄사월

예년보다 따뜻해서 방심하고 있다가 등원길 매서운 칼바람에 깜짝 놀랐다. 이제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지. 마치 숲 속에서 도토리를 주워 모으는 다람쥐처럼 나의 겨울 준비는 분주하다. 난방을 위해 다이소에서 뽁뽁이와 창문 틈새를 막는 패드를 사들고 왔다. 창고에 있던 온수매트도 침대 위에 깔아 둔다. 비타민과 감기 예방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이나 유자차도 준비한다. 이렇게 부산스럽게 겨울을 준비하는 이유는, 이상하게 겨울만 되면 한 번씩 아프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어설픈 날씨보다 확실하게 추운 겨울이 좋다고 하지만. 봄에 태어나서 그런가 추운 겨울은 나에게 사계절 중 가장 힘든 계절이다. 하지만, 겨울이 좋은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딸기의 계절이라는 것.


겨울이면 투명한 팩에 담긴 딸기들이 탐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그리고, 딸기를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다. 초등학생 때 방학이 되면 할머니는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손주들을 당신의 집에 직접 데려오시거나 며칠 씩 번갈아가며 사촌 집에서 지냈다. 공부도 해야 하고 따라다니는 걸 그만둔 큰 아이들을 제외해도 3~4명씩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와 버스를 타며 어떻게 다니셨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여장부셨다. 방학때마다 손주들과 함께해주신 할머니 덕분에. 생업이 바쁜 부모님과의 추억은 별로 없지만, 할머니, 사촌들과 함께한 추억은 종종 떠오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해 겨울 방학에도 사촌들과 함께 어김없이 할머니댁으로 놀러갔다. 어느 날,

장염과 감기가 한꺼번에 걸리고 말았다. 하필, 삼촌이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놀러가기로 한 날이었는데, 너무 속상한 마음에 아픈 것보다 눈물이 먼저 났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할머니와 단 둘이 집에 남았다.


할머니의 보살핌 덕에 기운을 차린 나에게 할머니는 시장에 가자고 하셨다. 시장 입구에는 과일가게가 있었다. 예쁘게 포장된 과일들이 눈길을 끌었다. 할머니는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이었는지. 엄마의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알았던 탓인지. 시장에 가도 뭐 하나 사달라고 하는 법이 없던 나는 그 날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저, 빨갛고 올망졸망 팩에 가지런히 담겨 있는 딸기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딸기 한팩을 사주셨다. 그 길로 집에 와서 바로 딸기를 전부 씻어 나 혼자 먹게 주셨다. 다른 아이들이 오기 전에 얼른 먹으라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딸기를 보면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생각나고, 또 그날의 따뜻하고 감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역시 딸기다. 딸 아이도 나를 닮았는지 과일 중에서도 딸기가 최고란다. 할머니는 멀리 사는 손녀가 보고 싶으실 때마다 전화를 하셨다. 요즘은 나보다 증손녀 목소리가 듣고 싶으시다고 하신다. 올 겨울에는 딸과 함께 맛있는 딸기를 사들고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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