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조금 특별한 도서관

by 봄사월

내게 도서관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 중 하나다. 영화관 하나 없는 시골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시끄러운 바깥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곳이자, 어떨 때는 집보다도 마음이 편안했다. 서가에는 새 책들이 가득하고, 마음만 먹으면 어떤 책이든 읽을 수 있다. 또, 그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독서에 빠졌다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선명한 기억은 해리포터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다. 그동안 전래동화나 아동전집, 그리스 로마신화 등으로 채워졌던 나의 독서 스펙트럼은 해리포터로 넓어졌다. 어린시절, 내 첫 몰입의 경험이다. 밤새 읽고 또 읽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는 걸 처음 경험해봤다.


중고등학생때 도서관은 나의 외로움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친한 친구 무리와 멀어졌을 때, 쉬는 시간마다 갈 곳 잃은 나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춘기를 쎄게 앓을 때도 나는 홀로 도서관을 찾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공강 시간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시험 기간엔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다. 가끔은 도서관에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시 도서관이 일상에 깊게 들어온 건 30대, 아이를 낳고부터였다. 집에서 도서관까지는 걸어서 15분. 아이가 유모차에 앉을 만큼 컸을 때부터 도서관은 우리 산책 코스의 종착지가 되었다. 책 대출 목록을 보면 당시 내 관심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첫째를 키우던 시절에는 육아서가 대부분이었고, 틈틈이 재테크 서적을 빌려보며 경제적 불안을 다독이기도 했다.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건 엄마 덕분이기도 하다. 지금으로 따지면, 엄마는 책육아를 실천하셨던 것 같다. 과학전집, 창작동화, 전래동화 같은 책들이 책장 가득 꽂혀있었다. 나는 책을 번호 순서대로 정리해두는 걸 좋아했다. 가득 찬 책장을 보면, 마음이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책을 가지런히 배열하는 그 행위만으로도 복잡한 마음이 안정되곤 했다. 엄마는 아빠가 장난감을 사오면 다시 환불해올지라도, 책에 관해서는 관대했다. 대형서점에도 종종 데려가 주었고, 책도 사주었다.


KakaoTalk_20251110_134054045_01.jpg 최근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


엄마는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신다.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가며, 각종 동물 흉내, 인물에 맞는 목소리를 흉내내시는 모습을 보면, 기억에는 없지만 내가 어렸을 때도 저렇게 책을 읽어주셨겠구나 싶다. 그 모습이 아련하면서도 괜히 감동적이라 동영상으로도 찍어두었다. 아이들이 크면, 할머니가 너희에게 책을 읽어주셨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돌이켜보면 내가 책에 가장 몰두한 시기는 언제나 외롭거나 고민이 많을 때였다. 직장에서 부족함을 느낄 때, 육아에서 길을 잃을 때,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을 때, 나는 늘 해답을 책에서 찾았다. 누군가 몸으로 겪은 경험이, 정제된 언어로 담긴 책은 내게 가장 믿음직한 선생님이었다. 요즘은 챗GPT 에도 많은 것을 묻지만, 책을 펼칠 때 느껴지는 지적 성장의 기쁨은 여전히 대체되지 않는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같다.


KakaoTalk_20251110_134054045_02.jpg 도서관 앞 공원 정자에 누워 바라본 하늘


지금도 마음이 복잡하거나 답답할 때면 무심코 발걸음이 도서관으로 향한다. 요즘, Z세대에게 에고 플레이스가 트렌드라고 하는데. 나에게 있어 에고 플레이스는 도서관이다. 도서관 가는 길엔 작은 공원이 있어 잠시 걸음을 늦추고 산책을 즐긴다. 때로는 정자에 드러누워 책을 베개 삼아 눈을 감을 때도 있다. 양손 가득 책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치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공짜로 책을 쇼핑하는 즐거움. 예전엔 대출 권수에 맞춰 7권을 꽉 채워 빌려왔지만 결국 두세 권만 읽고 반납하곤 했다. 그래서 요즘은 꼭 읽고 싶은 책 두, 세권만 골라온다. 물론 마음이 지치는 날엔 다시 양손 가득 빌려오기도 한다.


새해 버킷리스트에 늘 ‘연간 50권 독서’가 자리하지만 아직 한 번도 달성한 적은 없다. 챗GPT한테 물으니, 우리나라 성인 평균 독서량이 연간 4.5권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면 많이 읽는 거겠지. 그래도 내년 새해 목표는 책 50권 읽기다.


가끔, 아이들을 도서관에 데려간다. 집 책장에 아이들 책으로 가득하지만, 내가 도서관에서 위로와 배움을 얻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도서관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아직은 도서관에서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카페 한 구석에서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게 나의 작은 로망이다. 그날이 오면, 아마 나는 그 순간을 내 인생에서 가장 고요하고 행복한 시간 중 하나로 기억할 것 같다.


그리고 바라기는, 지금처럼 도서관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를. 아이들이 마음껏 책을 펼칠 수 있는 그 공간이 오래도록 따뜻하게 지켜지기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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