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였다. 돌이켜보면 오지랖이 좀 넓었던 것 같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는 일은 넘기면서도, 누군가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걸 보면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종종 '당돌하다'거나 '가정교육' 운운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어느 날, 할머니와 동생과 함께 1호선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이다. 사람이 가득 차 겨우 동생과 내가 자리에 앉게 됐다. 옆자리엔 몸집이 큰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다리만 조금 오므려준다면, 하나 반을 차지한 자리가 생겨, 할머니를 비롯한 다른 사람이 편하게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걸 얘기해 말아...? 한참을 속으로 망설이다가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저기...요... 죄송한데.. 다리를 조금..만... 오므려 주시면 안될까요...?"
그 덕분에 할머니는 약간 민망해하며 앉으셨지만, 그 여성과 할머니 사이에 약간의 말다툼이 오갔다. '가정교육'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도 나는 교훈을 얻지 못했다. 학원에서 친구가 선생님에게 맞고 혼나는 걸 보다 못해 편을 들다가 잘 다니던 학원을 그만 두기도 했고, 동생에게 이상한 말을 던지는 가족에게 "그런 말은 상처가 된다"고 말해 그 어른과 어색해지기도 했다. 학원 차에서 놀림 당하는 아이 편을 들다가 나 또한 놀림을 받았다. 그 밖에 소소한 오지랖을 부리다가 엄마에게 혼이 난 적이 몇 번 있다. "너나 잘 챙겨!! 자기 것도 못 챙기는게!"
성인이 되고 나서도 다르지 않았다. 술에 취해 우는 여자를 보고는, 그 여자를 울린 남자 무리에게 뭐라 했다가 큰 싸움이 날 뻔한 적도 있다. 직장에서는 불공평한 상사에 대한 불만을 대신 터뜨리다 결국 회사를 나왔다.
그런 내가 아이들이 있고 나서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안다. 나선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문제를 유연하게 풀어갈 방법도 많다는 걸. 당시엔 융통성이 없었다.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방법보다 의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바른 말이라도 그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바른 말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더더욱 조심스러워진다. 혹시 내 말이나 행동이 아이들에게 불이익이 되진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첫째 아이 친구와 함께 쇼핑몰에 갔다.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우리가 내리려고 했던 층보다 한 층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다시 한 층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우리는 기다렸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남성 두 명이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한 중년 남성이 말했다.
"엘리베이터 한 층 가는데, 계단으로 가면 되지 않아요?"
친구가 "유모차가 있어서요" 하자, 그 남성은 웃으며 덧붙였다.
"운동 삼아 유모차 들고 가면 되겠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친구가 내 옷에 가려진 만삭의 배를 가리키며 "임산부도 있는데요"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그는 멋쩍게 웃었다. 그와 일행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화가 나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에게 한 마디도 뻥긋하지 못한 내가 바보같기도 했고, 혹시 이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무례를 저지른다면 어떡할까 싶기도 했다.
이 세상이 나쁜 오지랖이 아니라, 착한 오지랖으로 넘쳐났으면 좋겠다. ‘오지랖’이라는 단어가 나쁘게만 쓰이지만, 서로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그건 좋은 일이 아닐까? 엘리베이터에서 무례한 말을 한 남성의 나쁜 오지랖 말고도 나는 착한 오지랖도 많이 겪어 봤다. 아이에게 따스한 말을 건네는 사람, 유모차가 들어오는 걸 보고 문을 잡아주는 사람. 나는 여전히 그런 사람들을 보며, 용기 내어 오지랖을 부려본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는 일.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주는 일. 길을 헤매는 사람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일. 이런 소소한 관심들이 쌓이면 더 큰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착한 오지랖'을 악용하지 않는 세상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