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거운 나의 집.

by 봄사월

*주의 : 이 글에는 '쥐'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동물은 단연코 쥐다. 라따뚜이도 재밌게 봤고(솔직히 애니메이션도 조금 징그러웠다.), 미키마우스도 좋아하지만, 꼬리를 움직이며 쏜살같이 달아나는 생쥐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쥐’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팔에 소름이 돋는다. 나에게 쥐는 이름조차 부르기 꺼려지는 존재, 마치 볼드모트 같은 것이다.


이렇게 쥐를 싫어하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때,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공장 부지 한편에 덩그러니 놓인 철제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곳이었다. 철제 슬레이트 지붕과 벽체, 비가 새는 지붕엔 천막이 덮여 있었고, 그것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타이어를 얹어두었다. 가정집이라기보단,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휴게 공간이나 기숙사로 쓰였던 듯하다. 같은 학원차를 타는 아이들이 우리 집을 보지 않도록 맨 마지막에 내리기를 바랐다. 슬프게도 몇몇 짓궂은 아이들에게 '거지집'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사실 더 슬픈 건 그 집에 쥐가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지붕 위를 뛰노는 쥐들의 발소리는 늘 우리를 긴장시켰다. 특히 안방과 동생과 함께 쓰던 우리 방을 잇는 복도는 녀석들의 놀이터였다. 문을 열기 전에는 내가 나간다는 신호를 보내야 했다. 문을 쿵쿵 치며 "저리 가!! 나 나간다!!"라고 외치면, 재빠른 녀석들은 도망쳤지만, 가끔 굼뜬 녀석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비명을 지르며 다른 방으로 도망쳤고, 쥐가 따라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세게 닫았다. 항상 우리 방에 가려면 이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가능하면 한 방에 머무르며 들락날락하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밤이 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천장 위에서는 ‘투투투, 투두둑’—쥐들이 달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천장은 쥐 오줌으로 누렇게 물들어 있었고, 복도나 방구석에는 쥐똥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벽지를 자주 바꿀 여유는 없었지만, 엄마는 가끔 도배풀을 발라 얼룩을 가리고는 했다. 어느 날은 방 한쪽 구석에 난 구멍 사이로 쥐새끼들이 머리 위를 가로지르며 지나가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이 무리를 소탕하기 위해 군데군데 덫을 놓았지만, 그 역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들 중 하나다. 나는 그 집이 싫었다. 육 남매 시절도 아닌데, 왜 우리는 이런 곳에 살아야 했을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그 집에 살았다. 쥐를 쫓고, 덫을 놓고, 아이들을 키웠다.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의 심경은 어땠을까.


쥐는 아무리 쫓아내도 어떻게든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마주칠 때마다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집 안을 어지르지 않는 것,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친구 집이나 사촌 집에 놀러 가면, 우리 집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반듯한 책상과 말끔한 바닥, 쥐 오줌으로 얼룩덜룩하지 않은 깔끔한 벽지. 그런 집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졌다. 그래서 더 열심히 청소하고, 또 정리했던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하면 이 집이 조금은 괜찮아질 수 있을까 싶어서.


그때부터 나는 상상 속 '새 집'을 스케치북에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몇 년 뒤에는 아파트로 이사를 갈 예정이니까 새 집 도면을 스케치북에 그리고, 여기는 동생 방, 여기는 내방. 침대는 이쪽에, 책상은 창가 옆으로. 생각이 날 때마다 상상 속 집 꾸미기를 하며 이사 갈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영향인지, 지금도 나는 집만큼은 정돈되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엄청 깔끔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마음이 답답하고 심난할 때면, 가구 배치를 옮기거나 서랍 속 물건들을 죄다 꺼내 정리한다. 집 정리에 몰두하면 복잡한 생각도, 걱정도 잠시 잊을 수 있다. 집을 바꿀 수 없던 시절, 내가 통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 정리정돈이었으니까.


그 집에서 12년쯤 살고, 우리는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처음으로 갖게 된 나 혼자만의 방, 내 책상, 내 침대. 내가 부러워했던 모든 것들이 내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 쥐가 없다는 게 좋았다. 물론 도시에도 쥐가 산다. 가끔 쓰레기장에서 마주치면, 짧은 순간에 어릴 적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때의 복도, 그때의 축축한 집의 냄새, 천장을 타고 다니던 소리들까지.


지금은 그 집이 철거되었다. 터만 남은 그곳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작았나, 우리가 그렇게 오래 살았던 곳이. 이렇게 작은 곳에서 쥐와 우울과 슬픔과 가끔은 작은 행복이 뒤섞여 살았구나. 철거 당시 쥐똥이 너무 많아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집에 살던 쥐는 다 어디로 갔을까. 구질구질했던 그 집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후련했다.


그 집은 이제 없지만, 가끔 꿈에 나온다. 문을 열고 나가면 또 다른 방이 나오고,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와 또 다른 방들. 아무리 문을 열고 나가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집안에서 나는 여전히 헤매기도 하고, 한참을 머물다 깨기도 한다. 허물어졌는데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이제 꿈에 그만 나와도 될 것 같은데. 나의 무의식이 아직 놓아주지 못한 기억이 있는건가 싶다. 즐거운 나의 집? 쥐거운 나의 집, 잘가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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