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함의 계절

by 봄사월

아이들 여름방학이 머지않았다. 올해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방학이 일주일 간격으로 겹쳐 있다. MBTI가 J인 나는 벌써부터 머릿속이 바쁘다. 이 녀석들과 하루 종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이내 멍하니 눈을 감았다. 큰아이에게 방학 때 하고 싶은 걸 물으니, 눈이 반짝인다. 캠핑, 놀이공원, 할머니 집, 슬라임카페 그리고 아이스크림. 생각나는 대로 쏟아지는 말들이 귀엽고도 부럽다. 그때 문득, 나의 여름방학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가장 기다려졌던 시간. 설렘, 엉뚱함,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계절.


초등학교 시절, 가장 기다려졌던 시간은 단연 여름방학이었다. '여름방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 한편이 간질거릴 정도로, 그 시절 나의 행복은 대부분 이 계절에 담겨 있다. 우리 집은 여행이란 걸 잘 다니지 않고, 나들이도 먼 이야기였다. 학교 소풍을 제외하고, 도시에 사는 사촌 집에 가는 일이 그해의 유일한 '여행'이자 설렘이었다.


방학이 되면 할머니는 손녀들을 불러 모으셨다. 길고 긴 여름방학은 보통 할머니댁이나 우리 집, 삼촌댁, 고모댁을 번갈아가며 보냈다. 별일이 없다면 다들 모였는데, 또래 사촌들과 함께 지내는 여름방학은 늘 시끌벅적했다. 그 해엔 우리 집 차례였다. 사촌 언니와 사촌 동생이 우리 집에 며칠 묵기로 한 것이다.


우리 집은 시골이었다. 시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작은 시장이 하나 있었다. 시장 옆에는 조그마한 버스터미널이 있었고,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려면 집에서 30~40분은 걸어야 했다. 한여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던 날. 무슨 용기였는지 사촌 동생과 내 동생, 그리고 나는 호기롭게 아이스크림을 사러 길을 나섰다. 주머니엔 짤랑이는 동전과 접은 지폐를 고이 넣어두고서.


가는 길은 설렘 그 자체였다. 아이스크림을 떠올리며 수다를 떨고, 까르르 웃었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스크림은 이미 다 먹은 지 오래고, 입속은 끈적끈적. 단 걸 먹으니 더 목이 말라왔다. 햇볕에 슬리퍼는 녹는 듯했다. 도로 위 아스팔트 길에는 아지랑이가 피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다. 야트막한 흙 둔덕.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둔덕을 넘기로 했다! 도시에서 온 사촌 동생은 예쁜 샌들을 신고 있었다. 사촌 동생과 나는 생각보다 질퍽하지만 다행히 흙 언덕을 무사히 넘어갔다.


문제는 내 동생 차례였다. 노란 피카추 슬리퍼를 신은 동생은 언덕 중간에서 발을 헛디뎠고, 슬리퍼 한 짝이 진흙 속에 파묻혔다. 발버둥 칠수록 슬리퍼는 점점 더 깊이 파묻혔다. 우리는 당황해 신발을 꺼내보려 했지만, 손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손은 흙으로 범벅, 동생의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우선, 동생들에게 기다리라 하고 집에 가서 신발을 가지고 와야 하나 어쩌나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 근처 주유소에서 일하시던 아저씨가 다가와 삽으로 진흙을 퍼내 주셨다. 진흙 속에서 신발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울음을 터뜨리며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주유소에서 손을 씻고 흙을 털어낸 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진짜 다행이다"를 반복했다.


아이들 여러 명이 모이면 호기심도 용기도 배로 늘어난다. 우리는 초등학교 여름방학마다 매번 엉뚱하고도 유쾌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모두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면 밤새도록 '그때 그 여름'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운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한 대화는 끝이 없다.


아이들이 엉뚱한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종종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왜 저런 행동을 하지?" 하지만 사실 우리도 그런 시절을 지나왔다. 땀과 진흙에 범벅된 채로, 울다가 또 웃으며 집으로 돌아온 여름의 한 장면이 지금까지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그 엉뚱함이 결코 쓸모없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도 한때, 그렇게 엉뚱하고 반짝이는 여름을 살았다는 걸 잊지 않기를. 우리 아이들의 여름방학도 엉뚱하고 웃음이 가득한 시간들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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