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엄마는 공장 안에 딸린 작은 식당에서 잠시 일하셨다. 직원들 식사를 해주는 일이었고, 우리는 그 식당과 연결된 작은 살림집에서 살았다. 식당 뒤에는 작은 주방이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시멘트 바닥의 넓은 공간이 이어졌다. 엄마는 거기서 나물을 다듬고, 김치를 담그고, 설거지를 했다. 늘 축축하던 바닥, 습기 찬 공기, 벽면에 진열된 조리 도구와 바가지들. 그 공간의 중심엔 늘 빨간 고무대야가 있었다.
튼튼하고 커다란 빨간 고무대야는 정말 만능이었다. 우리는 두 세개의 빨간 고무대야를 용도별로 나눠 썼다. 김장이나 채소 손질용, 주방용 설거지 대야, 그리고 여름이면 물놀이와 목욕을 겸하던 놀이용 대야. 지금 아이들은 여름이면 물놀이터나 워터파크에서 마음껏 뛰어노는데, 우리에겐 대야 하나가 그 모든걸 대신했다. 한낮의 햇볕 아래, 바가지로 서로에게 물을 끼얹던 기억. 빨간 고무대야는 즐거운 기억과 함께 엄마의 고단함을 떠올리게 한다. 물놀이보다, 설거지에 더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이 될 무렵이 할머니가 놀러오셨던 날이었다. 한바탕 점심 시간이 끝나고, 빨간 고무대야에는 역시 설거지가 수북했다. 엄마와 할머니는 챙이 넓고 뒷 목을 가려주는 천이 달린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호미를 들고 뒷산으로 나물을 캐러 가셨다. 어느덧 심심해진 나는 고무대야에 쌓인 설거지 거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작은 손으로 하나씩, 밥풀이 굳은 스테인리스 대접과 기름 묻은 접시를 닦기 시작했다. 지하수는 한여름에도 꽤 차가웠고, 기름 묻은 그릇은 자꾸 미끄러졌다. 가끔 미끄러진 그릇끼리 부딪히며 '쨍'하는 소리를 냈다. 그럴때마다 움찔했지만, 나는 칭찬 받을 생각에 기어코 그 많은 설거지를 다 해냈다.
잠시 후, 나물을 한아름 캐고 돌아온 할머니가 빨간 대야를 보고 말했다. “이걸 네가 다 했어? 아이고, 기특하다.” 할머니는 마치 내가 큰일을 해낸 것처럼 칭찬해주셨다. 어린 마음의 나는 그 말 한마디에 어깨가 으쓱하다못해 오랜만에 받는 칭찬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다시 해야겠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웃으며 지나갔던 것도 같고.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기억을 떠올려보니, 설거지를 다시 해야할 정도로 못해놨을 수도 있는데 혼내지 않은게 다행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날 엄마의 반응은 흐릿하지만, 그 일을 하면서 느꼈던 기대와 돌아오지 않은 말에 대한 아쉬움은 오래 남았다. 할머니는 지금도 그 날을 가끔 이야기하신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괜히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원래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가도, 부반장이나 회장을 맡아도 잘했다는 칭찬보다는 "그런거 왜 맡아서 귀찮게 해"하는 말이 먼저였다. 엄마가 학교에 자주 찾아와야 하는데 바쁘다는 이유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뭔가를 잘해서 누군가에게 항상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기특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간절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집안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숙제를 알아서 끝냈다. 그건 늘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때의 나는, 엄마의 인정이 간절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무거운 하루를 통과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왜 그렇게 칭찬을 받고 싶었을까. 아마 그 시절은 지금보다 칭찬에 인색하던 시대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베스트셀러였겠지. 요즘 사회라고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하다. 더 잘하라고, 더 올라가라고, 지금보다 한 발짝 더 내디뎌야 한다고 부추긴다. 아이에게도 너무 칭찬하면 버릇이 없어진다고 말한다. 물론 무분별한 칭찬은 경계해야겠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조금 더 칭찬해도 되지 않을까. 칭찬하는 말이 아이에게만 향하는게 아니라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잘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세상이 되었을까.
칭찬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는 결국 ‘인정받고 싶은 어른’이 된다. 남들의 말이나 반응에 민감해지고, 호감을 사기 위해 애쓰다 결국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며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된다. 엄마가 된 후, 나는 집안일과 육아라는 ‘성과 없는 노동’ 앞에서 자주 무력감을 느꼈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칭찬받지 못하고, 눈에 띄는 결과도 없다. 어느 순간엔 내가 무가치한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선배 엄마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했지만, 그 말들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 자라고, 나에게도 시간이 생기면서 그 말들이 서서히 이해된다. 다른 사람의 인정보다 스스로의 인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그래서 나는 아이가 작은 일을 했을 때도 꼭 말해주려 한다. 특히 칭찬받고 싶어 기대하는 그 눈빛을 나는 안다. “잘했어.”, “네가 해줘서 고마워.”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말들을 이제는 내 아이에게 아낌없이 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을 내 자신에게도 해줘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빨간 고무대야 앞에서 옷이 다 젖어가며 설거지를 하던 그 아이는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 있다. 여전히 누군가의 칭찬을 기다린다. 이제 그 아이에게 말 해줄 때가 되었다. "그때 정말 잘했어." 지금의 내가 그 말을 대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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