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자라서 온다

잊은 줄 알았던 장면들이, 자란 마음으로 다시 나를 찾아오는 순간

by 봄사월

어느 날, 아이가 혼자 방 한쪽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항상 먼저 놀아달라고 하는 아이인데.

조용히 집중하는 모습이 낯설 만큼 익숙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도 저렇게 혼자 놀던 아이였다.

누가 불러주기를 기다리며,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말을 걸던 아이.

기억은 이렇게 온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익숙한 풍경이나 표정, 공기, 냄새 같은 것에 스며들어
아주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마음을 흔들며 찾아온다.


아이를 키우며 자주 과거의 나를 만난다.
내 아이의 울음 속에서 내 울음을 떠올리고,
아이의 두려움 안에서 예전의 내가 느꼈던 외로움을 본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던 감정을, 지금의 내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이 글은 그런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토닥이고,
때로는 보내주기 위한 기록이다.


어릴 적의 나는 무언가를 참고, 감추고, 버텨내는 법을 일찍 배웠다.
하지만 그 속에도 분명 따뜻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 기억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시간을 지나 자라난 채로 돌아왔다.


그리고 요즘,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어느 날은 아프고, 또 어떤 날은 웃음이 난다.
그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한 번쯤은 글로 꺼내서 보내주라는 뜻 아닐까.'


그래서 써보려 한다.

계속 떠오르는 기억들, 그 안에 남아 있는 감정들을.

그런 기억과 경험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아픈 기억은 이제 좀 보듬어서 보내주고,

즐거웠던 추억들은 편하게 웃으면서 다시 꺼내보고 싶다.


나의 어린 마음과 오늘의 나 사이를 잇는 이야기.
잊은 줄 알았던 기억과,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

기억은 잊힌 게 아니다. 그저 자라서 온 것뿐이다.

금요일 연재